수업을 마치고 간만에 밖에 나와 식사를 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 앞 작은 식당에 왔는데 시킬 게 너무 많다.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메뉴를 열심히 탐구하고 의견을 모았다.
"감자튀김이랑, 팔라펠이랑 샥슈카도 먹을 거고. 당연히 빵에 후무스도 추가. 어때?"
"굿."
외국인 유학생들끼리 중동 음식점에 오면 메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들 먹어 본 요리도 많지 않거니와 외국인 입맛에 맞는 요리는 대강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무엇을 시키든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게 빵과 후무스다.
요것이 바로 후무스와 빵이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꾸덕꾸덕한 음식인 후무스는 생긴 건 잼 같아도 전혀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이난다.
처음에 먹었을 땐 응? 이게 뭐야 하고 갸웃했는데 몇 번 먹다 보니 끝없이 들어갔다. 담백하면서 약간 고소하고 콩 특유의 지방 맛도 느껴진다.거기다올리브유를 올려서 먹으면 기름진 맛이 배가된다. 후무스 종류도 올리브나 호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에 김치가 있다면 중동엔 후무스가 있다.
감자튀김을 기준으로 오른쪽 노란색이 후무스, 왼쪽이 팔라펠이다. 챱챱
두 번째로 맛나게 먹은 건 팔라펠이다. 고기를 잘 먹지 않는 중동에 특화된 요리인데 병아리콩을 곱게 갈아 동그랗게 뭉쳐 튀긴다. 나름 고기처럼 묵직한 맛이 난다. 이걸 빵에 넣고 여러 야채랑 싸서 먹으니 오호라. 꽤 맛있고 배불렀다.
이 녀석이다
빵 가운데를 갈라서 야채랑 곁들여 먹는 팔라펠
이와 비슷하게 쇠고기나 닭고기를 양념해 넣는 슈와르마(케밥)도 있지만 근처에 파는 데가 많지 않고 비싸서 많이는 못 먹었다.
마끄로바
세 번째는 닭고기볶음밥 마끄로바(Maqluba)다.
후무스나 팔라펠은 몰라도 마끄로바는 한국인입맛에 취향 저격이다. 볶음밥에 익힌 닭다리를 올려 먹는 조합이라 싫어할 사람이 별로 없다.
유대인 식당에선 찾아보기 어렵고 주로 팔레스타인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 레바논 음식이라 그런지 팔라펠이나 후무스만큼 이스라엘 전역에서 팔진 않았다. 처음에 이걸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한 번 먹고 완전 반했는데 예루살렘 시내엔 좀처럼 파는 데가 없어 아쉬웠다.
친구 엘리의 단골메뉴였던 샥슈카. 생긴 게 빨간 토마토 소스에 계란노른자가 올라가 있어 지옥에서 온 계란(에그인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엔 한국의 레스토랑에도 많이들 등장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만들기는 쉽지만 맛나게 만들기는 은근히 어려운 요리였다. 토마토와 파프리카, 양파 등을 오래 볶아서 국물을 만든 뒤 계란을 올려 반숙으로 익혀 먹는데, 토마토의 형체가 완전히 풀어지려면 너무 오래 끓여야 해 시판 토마토 소스를 일부 넣기도 한다. 따뜻한 야채와 반숙란을 피타 빵에 올려서 같이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토마토의 새콤한 맛이 계란의 느끼함도 잡아줘 산뜻했다.
이스라엘 사회 구성원 대다수인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자신들의 음식 규범인 코셔와 할랄을 지키기 때문에 한국만큼 다양한 식재료를 쓰지는 않는다. 이들은 새우 등 비늘이 없는 해산물을 일절 먹지 않고발굽이 갈라진 동물인 돼지고기도 먹지 않는다. 소고기의 경우 피를 완전히 뺀 고기만 먹는다. 흔히 레스토랑에서 먹는 미디움 레어 고기 이런 건 안 먹는다. 요리 잘 못 하는 사람이 재료로 승부 보는, 이른바 '재료빨'을 살릴 수 없어서 요리법이 많이 발달했다. 한국이었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 병아리콩을 이스라엘에선 거의 밥 먹듯 먹었으니, 음식이라는 게 어떤 요리법을 쓰느냐에 따라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디저트계의 대표주자인 아랍 디저트 크나파(Knafa)가 있다. 갈색설탕을 녹여서 굳힌 다음 잘게 갈아서 모차렐라 치즈 위에 올리는 디저트인데, 이걸 전자렌지에 살짝 돌려서 먹으면 두둥. 진짜 맛있다. 치즈는 눅진한 맛이 나고 위에 설탕은 살짝 녹아서 아삭아삭한데 굉장히 맛의 조화가 좋다.
이것도 아랍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었고 가끔 예루살렘 구도심 내부의 노점상도 팔았다. 나는 주로 유대인 시장을 갔기 때문에 크나파를 자주 사 먹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쓴 것들은 사실 다른 사람이 해 줘야 먹을 수 있었고 내가 직접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주로 파스타나 피자빵 등 최소한의 요리만을 해 먹었다. 가끔 라면 생각이 날 때 엄청 먹고 싶었지만 일단 신라면이 귀하기도 하고 외국인 룸메들 냄새 맡았다간 코를 틀어쥘 것 같아 못 먹었다.
게다가 나는 유대인 음식 규범(코셔)을 지키는 이들과 같은 기숙사를 썼기 때문에 요리가 더 한정돼 있었다. 냄비와 후라이팬을 따로 썼고 새우 같은 것도 룸메들 없을 때만 후딱 해 먹었다. 나머지 유대인 모두가 코셔를 지킬 뿐만 아니라 채식주의자여서 고기도 거의 굽지 않았다.
아시안 마켓에서 산 냉동 새우 교자.
이게 뭐라고 이거 만들어 먹으면서 넘 행복했다. 물로 끓이기만 하면 돼 냄새도 안 나고 후하후하 불어먹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새로운 음식도 좋지만 역시 익숙한 맛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