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0_고객님 어쩌라고요?

불친절의 나라

by 소다

기숙사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열쇠공을 불렀다. 외출하고 돌아와 잠긴 문에 열쇠를 밀어넣었으나 열쇠가 구멍 안에서 헛돌면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른 룸메이트들은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었다. 나는 몇 번을 더 시도하다 포기하고 게시판에 붙어있는 열쇠 수리공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출장을 부탁했다.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한 10분 기다렸을까, 별 생각 없이 계단에 앉아있다가 한 번 더 시도했는데 갑자기 열쇠가 끼긱 하고 돌더니 문이 열렸다. 오래된 문이라 잘 안 되는 때가 있나보다 하고 다시 수리공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다시 해 봤는데 되네요. 죄송해요. 안 오셔도 되겠어요."

그가 이미 출발했을 것 같아서 연거푸 쏘리를 연발했는데 그는 의외로 쿨했다. 오케이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방 안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간식을 꺼내먹고 놀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2미터는 돼 보이는 거구의 열쇠 수리공이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고 그는 몸을 숙여 문고리를 들여다봤다.

"저기, 아까 통화했지만 열쇠 건은 이미 해결됐어요. 죄송해요."

혹시 아까 못 알아들었던 걸까 싶어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사과했다.

그런데 열쇠 수리공은 이렇게 답했다. "나도 알아요. 근데 이미 왔으니까 돈을 줘야 돼요."

당황스러웠다. 서비스를 받은 것도 아닌데 돈을 줘야 된다고?

"그래서 아까 전화했잖아요. 안 와도 된다고요."

그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그때 이미 출발한 상태였어요. 난 이미 일을 받았고 일을 하러 출발했으니 돈을 받아야겠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 전화를 받고도 되돌아가지 않고 온 건 내게 돈을 받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가 요구한 돈은 약 60셰켈(2만2천원). 머리가 띵해졌다. 하지만 방에는 나와 열쇠수리공 둘밖에 없었고 돈을 주지 않는 이상 그가 돌아갈 것 같지도 않아서 나는 일단 돈을 지불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이미 출발했으니 출장비를 내는 게 맞다 싶으면서도 속상하고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외국인인 나를 속여서 돈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인건비가 비싼 이스라엘에선 일단 사람을 쓰는 서비스를 부른 이상 그 노무가 실제로 제공됐든 아니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었다. 하기사 출장서비스라는 게 출장을 요구하는 시점부터 고객과 기술자 사이에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니 도중에 무르고 싶다고 공짜로 무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갑이고 고객 만족도가 지배하는 한국에선 문앞까지 왔다가도 서비스를 취소하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이 많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소비 관행이 사실은 누군가가 권리를 포기해서 유지됐던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앞 카페에 갔는데 직원들이 주문을 받지 않아 카운터 앞에 계속 서 있었다. 직원들은 내가 서 있는 걸 알고도 수다를 계속 떨었다. 한국이었으면 "저기요, 주문 좀 받아주시죠" 했겠지만 이스라엘에선 그런 게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잠자코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은 한두 번 더 농담을 주고 받더니 내 쪽으로 와 '뭐 줄까?'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외국인에게만 이렇게 대우하는 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 버스기사는 잔돈을 세는 승객에게 연신 소리를 질러대고 기숙사 경비원은 학생증 카드를 거의 던지듯이 준다. 사무실 직원은 약속한 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나타나선 유유히 커피를 탄다. 화를 내면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커피를 마저 젓는다. 혹여라도 이런 사람들에게 백화점 갑질이나 직원 무릎꿇리기를 시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매장 밖으로 내쫓길 것이다.


한국에선 고객 만족이니 서비스 정신이니 하며 소비자가격에 직원 친절까지 포함돼 있다고(혹은 고객의 재방문을 위해 필요한 절차라고) 당연스레 믿는 경우가 많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끼리는 상호 간에 그런 믿음이 희박한 것 같다. 커피값에는 커피 원재료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노동력이 들어가 있지 직원의 친절한 미소와 호들갑스러운 배려까지 반영돼 있진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한국엔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면 소문이 빠르게 퍼진다거나 다른 나라보다 자영업자가 특히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자연스레 직원의 친절을 요구하는 고객이 많고, 직원이나 사장도 고객의 재방문을 위해 어느 정도 그것을 수용하는 경우가 적잖다.


꼭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식이 맞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내면에 있던 권리의식 같은 것을 되돌아보곤 했다. 그날 카페에서 돌아와 쓴 일기를 들춰보니 거기도 이런 내용이 있었다.

"커피를 틱 던져주고는 뭘 더 바라느냐는 듯 멀뚱멀뚱한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기분이 나쁜 게 정당한 일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고서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나에게 무슨 빚을 졌기에 나한테 그렇게 공손하게 커피를 줬어야 하는가 도리어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커피값을 줬고 그는 커피를 줬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간 내 안에 있던 '소비자권리'라는 게 사실은 '돈을 냈으니 대접 받아야 한다'는 천박한 논리에 근거했음을 깨닫는다.

(중략)...나도 학원 일을 할 때는 학생들한테 '돈만큼 값어치를 해 보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 그런 대접을 받다 보면 돈 값어치만큼 내 가치가 매겨지는 게 어느새 당연하다고 느껴지고 나도 소비자가 됐을 때 그런 권리를 기대하게 된다. 노동자로서 무시받았던 설움을 소비자로서 넉넉하게 되돌려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먹이사슬에서 승자가 되는 건 돈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벌면 무시 당하는 일도 없고 대접도 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부자도 아니면서(!) 뻔뻔하게 이 법칙들을 '어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면서, 어쩌면 꼭 돈을 많이 모아야만 존엄을 갖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동안 낯선 불친절에 익숙해지면서 친절을 기대하는 빈도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미 K-친절을 경험한 사람이 '사람 중심의 자본관'을 완전히 체화하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그 카페에 갈 때는 늘 유쾌하지 않았다. 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도 가끔은 상대방의 편의를 고려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좀 해 줬으면 싶다. 특히 완전히 식은 브라우니 내 주고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불쌍한 강아지 표정 할 땐 정말 속이 터진다. 뒤에! 바로 당신 뒤에 전자렌지가! 있다고! 그냥 가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데 왜!!!안 하는 거야!! 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중동여행기9_이스라엘의 두 가지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