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검색에 걸렸다. 빵칼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빵이랑 버터 먹으려고 챙겨 온 건데 이걸 문제 삼을 줄이야. 가뜩이나 수업 늦었는데 더 늦게 생겼다.
히브리대학 정문을 통과할 때면 늘 보안검색을 받았다. 지난 2002년 교내에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후 학생 모두의 위험물 소지 여부를 검사하는 절차가 공식화됐다. 당시 희생자가 7명 부상자가 80여명 발생했고 부상자 가운덴 한국인 유학생도 3명 포함돼 있었다.히브리 대학 구성원들의 충격이 컸던 사건이라 검색 절차는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
정문 앞에 줄 지어 선 학생들이 가방을 검색대에 올려놓아 통과하면 그 다음엔 수색하는 직원이 가방을 일일이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보내준다. 대강 본다고는 해도 가방을 다 열어서 보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아침 수업을 앞두고 검색 줄이 너무 길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그날은 아침을 거르고 나왔고 점심나절까지 수업이 있어 요깃거리를 챙겨야 했다. 빵과 작게 자른 버터를 통에 담아 넣으면서 그걸 발라먹을 뭉툭한 빵칼을 챙겼는데, 설마 그게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가방 속 빵칼이 수색직원 손에 걸리자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해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빵하고 버터하고 이렇게 발라서 먹으려고..."
당황한 나는 손동작까지 동원해서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직원들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 빵칼을 또 한 번 바라보며 '어쩌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대인이나 아랍인이면 몰라도 황인종인 나는 이-팔 전쟁의 불쏘시개일 가능성이 매우 작았던데다 이 뭉툭한 빵칼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기도 어려워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혹여나 사무실로 끌려가 두세시간 면담하고 수업 날릴까봐 걱정이 밀려왔다.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온갖 말과 행동을 동원해 그들에게 이것이 식사 용도이며 반드시 무탈하게 기숙사로 갖고 가겠다, 신경쓰이면 여기서 그냥 맡아도 된다는 말을 두서없이 했다. 뒤에 선 학생들에게 미안해 마음도 조급해졌다.
요렇게 생긴 칼이다
"오케이. 낫 어게인(두 번은 안 돼)."
휴! 빵칼을 돌려받아 가방에 집어넣고 얼른 자리를 떴다. 늘 귀찮기만 했던 아침 검색이 처음으로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자칫하면 사소한 걸로도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쿵거렸다. 그나마 내가 아시아인이었기에 이쯤에서 끝났지 히스패닉이거나 아랍인이었으면 이 정도로 끝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군사정부 시절 학교 다닌 부모님세대는 한 번 쯤 겪었을 일이지만 민주화 이후 학교를 다닌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업은 예상대로 늦었고 뒷자리에 앉아 뭔 내용인지도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낸 뒤 3층 라운지로 올라가 빵을 꺼냈다. 빼앗기지 않은 칼로 버터를 잘라 발라먹었다. 앞으로 밖에서 버터 바른 빵을 먹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두 번씩 꼭꼭 씹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