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2_처음 가 본 팔레스타인 친구의 집

어머님 음식이 최고

by 소다
동예루살렘의 거리 풍경

햇볕이 잘 드는 학교 라운지에 앉아 수업 교재를 읽을 때였다. 사실 읽는 척만 하고 짝사랑남 다비가 혹시 지나가나 기웃거리다가, 커피 한 잔 마셨다가, 밖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를 반복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한 팔레스타인인 학생이 다가와 "혹시 앉아도 돼요?"라고 물어봤다.


히브리대학 내부엔 4인용 테이블이 많아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꼭 다른 사람이 와서 앉곤 한다. 한국이었다면 `왜 내 앞에 앉지? 나랑 친해지고 싶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겠지만 외국에선 특별한 목적 없이도 자리를 많이들 공유하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공항에서도 카페에서도 학교 건물에서도 `앉아도 돼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대부분은 말을 걸기보단 정말로 앞에 앉아서 빵 먹거나 책 보거나 핸드폰을 하다가 가곤 했다.


그 아이는 달랐다. 붉은색 히잡을 두른 `마이사'라는 그 친구는 맞은편에 앉아 잠시 히브리어 책을 들춰보는가 싶더니 나를 흘끔흘금 쳐다봤다. 내가 읽는 책을 공연히 들여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보다 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수업 준비하는 거예요?"

마이사는 히브리어가 가득 적힌 책을 펴 놓고 있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yes"라고 답했다. 국제대학에서 만난 다른 유대인 학생들과 달리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다. 교환학생들이 듣는 수업이 아닌 본 대학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 그런 것 같았다. 본 대학 수업은 모두 히브리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마이사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어디 사느냐, 한국에서 왔느냐, 무슨 수업을 듣느냐 등등을 물었다.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날아와 히브리대에 앉아 있는 동양인의 정체가 궁금한 것 같았다. 마이사는 특히 케이팝을 좋아했고 유튜브로 각종 한국 영상들도 즐겨 본다고 했다. 나도 이스라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고 했더니 마이사는 대뜸 "친구하고 싶은데 연락처 받아도 돼?"라고 물었다.

아, 내가 마이사만큼만 붙임성이 있었어도 히브리대에서 친구를 열 명은 사귀었을 것이다.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며칠 뒤 마이사가 연락했다.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유대인 친구들과만 사귀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 친구의 집에 가 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주로 사는 동예루살렘은 동행인 없이 혼자 가기가 매우 까다로운 지역이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뉘어 동예루살렘엔 팔레스타인 주민이, 서예루살렘엔 유대인이 살고 있는데 그 사이엔 높은 분리장벽이 있다. 2002년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 방어 명목으로 요르단 서안지구 일대를 장벽으로 둘러싸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도시가 반으로 나뉘게 됐다. 내가 이스라엘에 있었던 2015년엔 아직 장벽이 건설되던 중이었고 동예루살렘에 살지만 서예루살렘으로 직장과 학교를 다니는 이들이 매일 장벽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장벽 너머로 가는 건 아무래도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다음날 서예루살렘 구도심에서 마이사를 만나 집으로 함께 갔다. 대문에 들어서자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마이사의 언니 샤파가 나를 맞아주었다. 샤파는 수줍었고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이 있어 보인다 싶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물건을 찾아주었다. 마이사의 어머니가 나와서 밝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집은 여느 가정집처럼 가운데 부엌이 있고 양 옆에 방이 세 개 있는 형태였다. 우리는 가장 안쪽의 거실로 들어갔다. 껍질에 무당벌레가 그려진 귀여운 초콜렛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처음 만난 내게 이런 대접을 해 주다니, 나는 벌써부터 감동하고 말았다.

초콜릿과 커피. 마이사 어머님이 주신 웰컴 드링크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마이사의 또 다른 동생 나이민이 뛰어들어왔다. "안녕, 난 나이민이고 춤을 잘 춰." 갑자기? 발랄한 자기소개에 웃음이 터졌다. 이 집에서 가장 활발한 아이 같았다. 거실 밖엔 네 살짜리 여동생 라마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우리 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마이사에겐 남동생도 한 명 있었지만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슬람교 특성상 그와 대화를 오래 나누지는 못했다. 내가 반사적으로 악수를 청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이슬람교도는 가급적 이성과 악수하지 않는다는 걸 그 땐 몰랐다. 남동생은 곧 거실을 떠나 제 방으로 갔다.


마이사의 자매들은 마이사만큼이나 붙임성 있고 재치 있었다. 나는 히브리어나 아랍어를 할 줄 몰랐고 그들은 영어가 서툴렀지만 우리는 함께 한국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놀았다. 마이사의 동생 나이민이 당시에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춤을 직접 춰 줬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손뼉을 짝짝짝 쳤다. 나이민은 쑥쓰러워하면서 몇 가지를 더 춰 주더니 나보고도 추라고 했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내가 했던 몸 동작은 너무 엉성해서 지금도 잊고 싶다.


한참 재밌게 노는 중에 마이사의 어머니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마끄로바(닭고기와 볶음밥)가 거기 있었다. 내가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자 마이사가 `이거 좋아하냐'며 기뻐했다. 마이사 친구라는 이유로 너무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죄송할 정도였다. 마끄로바는 우리 넷이서 사이좋게 다 비웠다. 중간중간 빵과 샐러드, 콘치즈를 곁들여 먹었고 닭고기수프로 목을 축일 수도 있어 좋았다. 닭고기와 함께 먹으라고 준 요거트 소스도 있었지만 그건 같이 먹으니 어쩐지 낯설어서 따로 먹었다.

마끄로바와 샐러드, 빵, 닭고기수프

마이사의 어머님은 우리가 다 먹은 접시를 금방 가지고 가시고는 또 다시 빵과 해바라기씨와 초콜렛, 쿠키 등을 담아서 내 왔다. 너무 배불렀지만 단 것이 앞에 있으니 또 입에 쭉쭉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중동식 차까지 다 마시고 나니 배가 터질 듯이 불렀다. 집들이 선물로 케이크가 아니라 더 좋은 걸 들고 올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나오는 음식들

소화를 시키고 있자니 마이사와 언니가 히잡 쓰기 체험을 시켜줬다. 둘이서 핑크색 히잡을 내 머리에 고정하려는데 길다란 옷침이 엄청 많이 들어가서 혹시나 찔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한평생 히잡을 쓴 친구들은 내 머리에도 금방 말끔한 히잡 모양새를 만들어 줬다. 히잡 쓴 스스로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해 친구들과 함께 셀카를 여러 장 찍었다.


그날은 늦게까지 마이사네서 놀았다. 같이 집 근처 이슬람 기도실도 가 보고 팔레스타인 역사가 기록된 마을 회관에도 다녀왔다. 마이사는 길을 가며 마주치는 모든 이웃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과연 동예루살렘의 `핵인싸'답게 아는 사람이 무지 많았다.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웃으면서 인사해 주어 안도했다. 어떤 작은 꼬마아이는 2층에서 내려와 나를 계속 바라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마을 회관

돌아오는 길엔 비가 왔고 마이사는 아버지를 보러 가야 해 나를 바래다주지 못했다. 대신 택시를 태워주었는데 그 택시가 히브리대 기숙사까지 갔다. 내가 택시를 타자 마이사는 아랍어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주고 내 손에 동전을 쥐어주었다. 어린아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챙김 받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사실 혼자 집 가기 무서웠거든.

바깥에 비가 많이 내렸다

마이사와는 그 뒤에도 몇 번 만났고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도 그 집에 한 번 더 들렀다. 그 때는 마이사의 남동생도 아버지와 함께 놀 수 있어 더욱 즐거웠다. 이스라엘에 머무는 동안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아랍인은 마이사 뿐이다. 그에게 지금도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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