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3_갈릴리 불멍과 베드로 물고기

설레고 불안했던 첫 여행

by 소다
해 지는 갈릴리 호수

본격적인 이스라엘 여행은 석달 뒤 합류하는 아버지와 함께 할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라도 주말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히브리어도 읽을 줄 모르는 내가, 차도 없이 먼 델 다녀올 수 있을까 싶어 주저하던 차였다. 그 때 단짝그룹의 윌리엄이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호수도시 갈릴리로 여행을 가 보자고 제안했다.

"이틀 정도 가는 거면 그리 힘들지 않을거야. 내가 좀 알아볼게." 믿음직스러운 윌리엄의 제안에 나는 냉큼 동참했고 단짝 반도 합류했다. 우리는 윌리엄이 알아본 여행 계획에 올라타되 식사 등 각종 물적 지원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출발 일주일 전쯤 여행을 취소했다. 학교 숙제가 많아졌다나 뭐라나. 졸지에 선장을 잃고 선원 둘만 남으니 부푼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미 갈릴리 가는 걸로 생각하고 이것저것 검색하며 기다렸는데 이게 뭐람.

어디서 용기가 솟았는지 혼자라도 가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제 나도 이스라엘 체류 한달차라 이거야.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검색하자 버스가 내리는 정류장 근처에 이층집이 하나 있었다. 몇 군데를 더 알아보았으나 거기만한 데가 없는 것 같아 일단 예약을 했다. 갈릴리는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낮에는 갈릴리 호수를 구경하고 밤에는 숙소에서 쉬면 될 것 같았다.

이런 계획을 설명하니 친구 반이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혼자 다니는 것보단 재밌을 것 같아 흔쾌히 수락했다.


수업이 없었던 금요일 아침 우리는 트램을 타고 시내 고속터미널로 가 갈릴리로 가는 버스를 끊었다. 둘 다 히브리어를 할 줄 몰랐지만 버스표를 파는 창구에다 대고 갈릴리!갈릴리!하고 외치니 안에서 알아듣고 갈릴리 가는 표를 줬다. 영어 지명 갈릴리가 히브리어로 '하갈릴'이어서 대강 알아들어준 것 같았다. 지역명이 서로 비슷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버스정류장에 히브리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있어 다행이었다

버스 안에서 깜빡 자고 나니 생각보다 금방 갈릴리에 도착했다. 숙소로 가는 방향의 버스를 수소문하고 한참을 걸어간 끝에 낡은 2층짜리 가정집 숙소를 찾아냈다. 내부는 부엌과 거실, 옥상 테라스가 있어 나름 가정집다운 멋이 있었지만 확실히 낡은 느낌이었고 음식을 사 먹을 만한 동네도 가깝지 않았다. 반은 숙소에서 쉬고 나는 얼른 나가서 파스타거리와 고기류를 샀다.

숙소는 낡았지만 전망이 좋았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물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물가가 한국의 두세 배 가량 비싼데 예를 들면 자그마한 샌드위치 하나에 30셰켈(1만1천원) 정도 한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파스타는? 70셰켈(2만5천원)은 기본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디 가서 음식 하나 시킨다 하면 메인요리에 음료, 팁 포함해서 3~4만원돈 나가는 건 우습다. 나는 그래서 값싼 아랍식당이 아닌 이상 여행 내내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아주 가끔만 사 먹었다. 나와 달리 물가 비싼 유럽에서 온 유학생들은 이스라엘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게 느껴졌는지 돈을 펑펑 썼고 스위스인 친구는 심지어 '물가가 싸다'는 망언(?)까지 했다. 매일 줄어드는 통장을 보며 쪼들리는 심정은 나와 호주인 친구 두 사람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의 여행에 동행한 친구는 부모님이 일본에 빌딩을 소유했고 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온 아이였다.


그 친구는 내가 평소에도 이스라엘 물가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도 군말 없이 전체 스케쥴을 잘 따라왔다. 아무리 자기 스스로 선택한 여행이라지만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를 택하고, 바깥음식 대신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친구를 따라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가 내게 많이 맞췄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허름한 숙소에 짐을 부렸다. 밖에서 사 온 재료로 파스타를 대강 해 먹고 나니 편안했다. 친구는 학교 과제를 시작했고 나는 뒷산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먼 거리를 이동하고 나니 나도 친구도 나른하니 졸려왔다.


현지 재료로 해 먹은 토마토 파스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 빠졌던 우리는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서야 일어났다. 형광등을 켜려는데 틱, 틱 소리만 나고 켜지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그는 약간은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여기는 종종 정전이 된다. 기다려라"고 했다. 우리는 1시간을 더 기다렸고 너무 추워서 어쩌지 못할 때쯤 다시 연락을 했다. 이번엔 악다구니였다.

"너무 추운데 대체 언제쯤 전기가 들어오는 거요?추워죽겠는데 밥도 못 해 먹고!!"

주인장은 그때서야 진지해지더니 차를 끌고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자기 이름은 아브라함이고, 강아지 한 마리를 같이 데리고 가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때는 아브라함이든 아브람이든 빨리 오기나 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브라함은 30분쯤 뒤에 도착했다. 그는 전기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며 시내로 데려다줄테니 밥을 사 먹고 돌아오자고 했다. 우리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었으므로 그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져 온 고물차는 털털거리며 갈릴리 시내를 돌아다녔고 작은 식당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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