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6_진료비가 10만원?

그게 무슨 소리요

by 소다

갈릴리에서 돌아온 뒤 평소와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수업을 듣고 안식일을 챙기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갑자기 귀 안 쪽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도 귀가 약한 편인데 귀에 물이 들어가거나 귀이개를 잘못 쓰면 귀 통증으로 고생하곤 했다. 원인을 잘 몰랐지만 며칠 지나면 나아지기에 그냥 뒀는데, 그날은 샤워를 하고 나서 생긴 귀 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틀, 사흘 뒀더니 상처로 인한 진물이 나오고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귀를 날카로운 도구로 후비는 듯한 고통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러다 귀 안 들리게 되는 거 아냐? 처음 느끼는 고통에 외국이라는 두려움이 겹치면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가까운 병원은 히브리대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가야 있었다. 트램이나 버스가 가지 않는 애매한 거리인데다 기숙사 앞에선 택시도 잘 잡히지 않았다. 아픈 귀를 싸매고 한참을 걸었다. 도에 표시된 장소에 도착해서도 수많은 건물 중 어디가 병원인지 찾을 수 없어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봐야 했다. 내가 히브리어 간판을 못 읽은 것도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행인들도 모를 만큼 병원이 작았던 탓도 있었다. 시내에 있는 큰 병원을 갈걸 그랬나 후회막심일 즈음 병원을 안다는 한 남성을 만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돌프씨. 안경을 쓴 중년 유대인 남성 의사인 그의 이름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내게 처음으로 귀 통증의 원인을 알려줬기 때문이요, 그 대가로 10만원의 진료비를 받아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사회보장제도는 꽤 발달한 편이고 건강보험제도도 잘 갖춰져 있지만 나는 외국인이어서 그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교는 유학생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고 나 역시도 출발할 때 유학생 보험을 따로 들어두었는데, 당시에는 보험금 수령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라 방치해 두었다가 나중에 신청하려니 신청 가능 시기가 지나 있었다. 현지에서 아플 때는 관련 의료비를 우선 지출하되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꼭 보험금을 받자!)


아돌프씨는 내 귀를 후레쉬로 한 번 비춰보고 "귀 안에 곰팡이(fungi)가 있네요. 약을 넣어서 치료합시다"라고 말했다. 그가 처방해 준 약은 귀 안에 액체로 된 약을 떨어뜨려 세균 번식을 막는 것이었다. 그의 진단에 든 진료비는 10만원이었고 각종 약까지 사고 나니 총 15만원이 지출됐다.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더 비쌌다.


약을 처방 받자마자 마을 벤치에 걸터앉아 약물을 귀에 털어넣었다. 귀 안 쪽이 약간 찐득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대와 달리 통증이 가라앉진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어서 귀 안이 조금만 마른다 싶으면 고개를 젖히고 약을 넣었다. 시큰거리는 귀를 부여잡고 돌아오는데 기숙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게다가 기분 전환 하려고 아랍식당에 들러 시킨 팔라펠 샌드위치는 귀 통증 때문에 제대로 씹을 수 없었다. 서러운 감정이 커지면서 약간 눈물이 나려는 타이밍에 샌드위치 안에 든 양상추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평소보다 야채를 더 많이 넣어달랬더니 빵 밖으로 야채가 비어져나온 모양이었다. 좀 이따 닦아야지 하고 마저 감정 잡고 슬퍼하려는데 이번엔 토마토가 또 후두둑 떨어졌다. 그날 손님이 나 뿐이었는데 바닥에 야채가 가득한 걸 보면 그 다음부터 주인장이 날 싫어하게 될 것 같았다. 휴지를 뽑아 바닥에 떨어진 야채를 줍다 보니 눈물이 쑥 들어가 버렸다.


귀가 낫는 데는 3주가 넘게 걸렸다. 이 정도면 그냥 자연치료되는 기간이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즈음 통증이 줄어들었고 차츰 괜찮아졌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에 갔다가 정확한 병명을 듣게 됐는데 '진균증'이었다. 귀 안에 상처가 나거나 습해져 진균이 번식하면 통증이 생기고 상처가 덧난다는 것이다. 한국 병원의 의사는 우웅 소리가 나는 어떤 기기를 내 귀에 대더니 상처에서 나온 진물 같은 것을 한꺼번에 빨아들였다. 귀 안이 순식간에 청소됐고 통증도 그 자리에서 싹 가셨다. 진료비는 4천원. 레이저로 살균까지 말끔히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아돌프 선생님. 병원에 이런 기계 좀 갖다놓으시지"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귀는 사흘 만에 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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