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이야기만 쓰다 보니 거기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외국인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만 보낸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선 좀체 들을 수 없었던 서양인들의 직설 화법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마음 속 걱정을 털어놓았다가 무관심한 반응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럴 땐 아, 한국에서느꼈던 것 같은 유대감을 기대하긴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기숙사 샤워실은 자그마해서 샤워를하고 나면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독일인 룸메이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바닥에 물기를 없애 줬으면 좋겠어."
나는 알았다고 대답한 뒤 샤워실로 가서 문에 기대어 있던 바닥형 밀대로 물을 밀어 배수구 아래로 흘려보냈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음식을 하는데 룸메이트가 멀리서 나를 부르며 "내가 다시 말해줘야 되니?(Should I tell you again?)"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생각했다. 다시 말해야 하냐고? 웬 부모님 화법인가? 화장실 청소를 제대로 안 해 혼나는 아이가 된 기분으로 샤워실에 다시 갔다. 독일인 룸메는 밀대를 잡더니 물을 밀어 배수구에 물을 흘려보내는 시범을 직접 보였다. 나도 그렇게 했지만 밀대에 힘을 충분히 싣지 않아 물기가 남았던 모양이다. 그는 물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하고자리를 떴지만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샤워실 물기가지고 어린애 취급을 받는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한국이었으면 "잠깐 와 줄 수 있어?" 정도로 말했을 텐데.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외국인 친구 둘과 안식일 식사를 준비하던 때였다. 두 사람이 자신의 방에 초대해 음식을 제공하기로 하고 다른 친구들이 디저트를 사 가기로 약속돼 있었다. 나는 음식 조리를 맡은 두 친구의 윗층에 살았으므로 혹시 도울 게 있을까 하고 약속시간보다 빨리 내려갔다. 처음엔 음식을 만드는 두 사람 옆에서 감자를 깎거나 테이블을 닦았지만 나중엔 거들 일이 없어 음식 조리 과정을 구경하고만 있었다. 나는 졸려왔고 잠깐 방에 가서 쉬고픈 마음이 들어 잔꾀를 부렸다.
"나, 방문을 안 잠그고 온 것 같은데 잠그고 와도 될까?"
둘은 당연히 그러라고 했고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 바로 문을 잠그지 않고 침대에 누워 쉬었고 휴대폰도 했다. 밑에 있던 두 사람이 그 정도는 이해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한 15분 정도 쉬다가 내려갔는데 두 사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뭘 하고 왔어?" 나는 당황했고 그냥 방에서 좀 쉬다 왔다고 실토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너 처음에 여기 왔다가 음식이 아직 덜 만들어졌고 시간이 뜨니까 올라가서 쉬고 싶었던 거지? 우리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리고 만약 정 그러고 싶었으면 솔직하게 쉬고 오겠다고 했어야지. 문 잠근다고 하고 올라가서 그렇게 쉬는 건 옳지 않아."
나중에 내가 음식을 만드는 입장이 됐을 때 나는 그들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담아 음식을 대접하는데 상대방이 식당에 온 것처럼 요리가 나오는 시간에 딱 맞춰 먹고 가는 게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걸 잘 몰랐고 나의 잔꾀가 남김없이 드러나는 기분이라 창피하고 서운했다. 그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기 때문에 더 부끄러웠던 것 같다.
"미..미안. 내가 잘못했어."
"괜찮아. 다음엔 그러지 마. 앉자."
다른 친구들이 방에 들이닥치면서 어색한 분위기는 바뀌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식사를 했지만 나는 그 일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서양인의 항의 방식은 이토록 직설적인가?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으면 "어디 갔었어~"하고 장난으로 살짝 티 내는 정도였을 텐데.
이런 일들이 한두 번 쌓이면서 나는 우리 사이에 상당한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특히 나의 고민을 외국인 친구들과 공유할 수 없을 때 더욱 그랬다. 당시 나는 사방에 서양인밖에 없는 동네에서(이스라엘 교환학생의 대부분은 자신의 혈통적 고향이 궁금해 찾아 온 영미권 유대인이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배우고 소화하는 데 상당한 좌절감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에서 국제대학을 다녀 영어를 쓰는 게 아주 어렵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국어 같지도 않았고, 그런 언어로 생소한 이스라엘 문화를 배운다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이 역시 유대 문화에 대해 잘 아는 유대인 친구나 영어에 능숙한 서양인 친구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할 수 있어 화이팅!"을 외치거나 "이렇게 해 보면 어때?"와 같은 제안을 했는데, 그런 반응도 충분히 고마웠지만 가끔 혼자라고 느꼈다.
물론 이런 감정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우리 그룹엔 비유대인과 유대인이, 형편이 넉넉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모두 있었다. 서로의 배경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농담과 씀씀이, 행동으로 우리들은 종종 갈등했고 서로에게 실망했다. 처음 만났을 땐 '우리 정말 잘 맞는 것 같아!'라며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점이 부각됐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이해를 구하기보다 그러려니 하는 쪽을 택했다. 사상이 너무 다르다 싶은 사람은 밀어냈고(유대인 학살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독일인이라든지) 그럭저럭 참아줄 만한 사람(평소에 하는 행동은 좀 무례한데 애는 착해)은 서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같은 격정적 질문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지내다가 헤어질 사이라고 다들 암묵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느꼈던 감정적 고립감은 또래의 한국인 친구 세 사람을 사귀면서 해소됐다. 한국인 유학생 모임에서 만난 우리는 '하이'하고 악수를 청하는 대신 한국인 특유의 쭈뼛거리는 자세로 자기 소개를 했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저는 교환학생이고 여기서 무슨 수업을 듣고 있어요, 언니는요? 그러게요, 여기 생활하는 게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혹시 룸메이트들이랑은 잘 맞으세요? 수업은요? 음식은요? 어머 저도. 이런 얘기가 쌓이면서 우리는 와락 친밀감을 느꼈다. 바로 이거였어!
서로의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부지런히 애 쓰고 맞장구 치며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이 과정이 너무도 반가웠다.
한국 학생들끼리는 그 뒤로 잊을 만 하면 서로의 기숙사에 들러 김치나 볶음밥 같은 것을 나눠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시내 어디 식당 잘 하던데 가 봤느냐, 이번 한 주도 무탈하게 잘 보냈느냐 이런 말들이 퍽퍽한 외국생활을 버티게 해 주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면 어쩐지 뜨거운 물이 담긴 목욕탕에 몸을 푹 담근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비단 그들이 한국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대화 주제와 방식이 잘 맞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 알고 지낸 사람들 중 한 명은 한국에 들어와 있어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다. 상처받기 싫었던 나는 그곳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이스라엘에서만 볼 사이'라고 울타리를 쳐 뒀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예외는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