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8_베들레헴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뻔했지만 즐거웠던

by 소다
광장에 선 화려한 트리

갈릴리 여행을 취소했던 윌리엄이 또 다시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엔 베들레헴이다. 12월24일이 다가오니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베들레헴에서 보내 보자는 게 그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사는 요르단 서안지구에 있기 때문에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윌리엄이 동행해야만 같이 갈 수 있었다. 그가 갑작스레 여행을 취소한 전적이 있어 의심스러웠지만 난 또 한 번 그를 믿기로 했다. 이번엔 단짝 그룹 모두가 함께하기로 했고 윌리엄과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들도 여러 명 동참했다. 전체 여행 인원은 열 명 가까이 됐다.


이스라엘 구성원들의 주된 종교는 유대교(유대인)와 이슬람교(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국가적 명절로 지키진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에겐 매력적인 관광지고 실제로 크리스마스 전후로 베들레헴엔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우리는 그 인파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버스로 1시간 이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스라엘 군은 평소 베들레헴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지만 성탄절 때는 일부 봉쇄 조치를 완화한다. 우리는 베들레헴에 내려 윌리엄이 예약해 둔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체크인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골목마다 장식을 해 뒀다

"자, 우리 선물 교환부터 해야지?"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 열 명 가운데 예닐곱명이 서른살을 넘긴 '어른'이었지만 우리는 여행 전부터 설레어하며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식을 준비했다. 자기가 선물을 준비할 대상은 제비뽑기로 미리 뽑아둔 상태였다.


나는 윌리엄에게 자주색 스카프를 받았다. 평소 스카프를 자주 하는 나를 고려한 선물이었는데 색깔이 곱고 예뻐 마음에 쏙 들었다. 윌리엄은 '센스 장난 아니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에 내가 약 두 달 간 윌리엄의 짝사랑을 '코치'해 주며 부쩍 친하게 지냈는데 그 덕에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았던 것이다.


나는 같이 여행 온 피터에게 야구모자를 선물했다. 피터를 잘 몰라 뭘 선물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에둘러 물어보니 야구모자가 없다고 해 그것을 선물했다. 피터가 선물을 끌러보더니 '오~'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아 안도감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스카프

날이 어두워질 무렵 광장으로 나가 저녁을 먹었다. 역시나 아랍지역에선 마끄로바(닭고기+볶음밥)가 최고다. 콜라와 샐러드를 시켜 함께 먹으니 기름진 맛이 쭉쭉 들어간다. 식당 주인장도 외국인 열 명이 들이닥쳐 계속 음식을 시켜대니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식당에서 시킨 마끄로바와 콜라

크리스마스 행사는 자정께나 열릴 예정이었고 우리는 그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빨강색 산타클로스 모자를 사서 다같이 써 보기도 하고 커피숍에 가서 핫초코를 사 마시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잠시 마을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지만 워낙 규모가 작고 파는 물건도 비슷비슷해 금방 구경거리가 바닥났다. 날이 슬슬 추워지고 광장에 인파가 몰릴 때쯤 폭죽이 공중에 펑펑 터지더니 행사가 시작됐다.

여기서 핫초코를 사 마셨다
의미심장한 포스터. 여기서 정의가 무엇을 의미할진 유대인이냐 아랍인이냐에 따라 다를 듯 했다
광장 첨탑이 밝게 빛난다

행사장 안팎이 무대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을 볼 수도 없었지만 대단한 것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멀리서 보여주는 전광판엔 경비원이 밀려드는 사람을 막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뭐 기다리는 거예요?"

옆에 선 백인 노부부에게 물어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온다고 했다. 이따가 유명 정치인 누구도 올 거라고 그들은 덧붙였으나 나는 이름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베들레헴 현지 주민들의 소박한 공연과 지역 교회의 캐럴 합창, 트리 점등식 같은 것을 기대했던 나는 약간 김이 새고 말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이스라엘 유명 정치인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두 시간씩 추위를 견디며 기다릴 만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유명인의 영상은 몇 시간 뒤 깔끔한 화질로 유튜브에 올라올 것이었다.


볼 것을 다 봤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쏟아졌다. 털레털레 호텔로 돌아와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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