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내내 스스로를 지배했던 정서는 버거움이었다. 그 때 썼던 일기를 펼쳐보면 마음이 힘들다, 원인을 모르겠다, 내가 모자라서 그런 것 같다 등등의 글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순간순간 기쁜 일도 있었으나 평상시엔 타지에서 느낀 학업의 어려움에좌절할 때가 많았다. 가끔은 너무 우울해져서 파스타를 2인분치 해 먹거나 엄청나게 단 푸딩을 사 먹곤 했다.
으마무시한 양의 파스타
12월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지금은 오후 3시30분 카페 앞 도서관이다.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지만 그저 일기를 쓰고 있다.
사실 여기서 수업 따라가느라 고생하는데 외국인 애들이 국제대학 수업 너무 쉽다고 얘기할 때 엄청 억울하고 내가 덜떨어진 건가 싶다. 맨날 놀러다니고 리딩도 안 읽어오는데 수업시간에 날라다니는 그들을 보면 내 노력이 뭐가 되나 싶다. 나는 밤낮 아무리 성실히 과제를 읽어도 수업 내용을 소화하기가 버거운데 말이다. 게다가 유대교나 중동 역사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보니 수업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수업이 끝나면 마음이 너무 힘들다. (중략)
그래도 스스로를 과하게 자책하고 그 채찍질을 동력 삼아 학기를 살아내고 싶지는 않다. 이 곳에서의 시간이 치열한 노력만이 아니라 즐거움과 여유를 추구하고 스스로를 탐색하는 행복한 시간들로 기억되었으면 해서다."
당시 감정을 쏟아냈던 일기장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는 그 때 겪은 심리적 압박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강 알고 있다. 낯선 타지라 잠시 찾아오는 감정인 줄로 알았던 나는 한국에 와서도 취업을 준비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비슷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알고 보니 스스로가 충족해야 한다고 느끼는 내면의 기준이 너무 높아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자주 재우치고 자기가 낸 결과물을 낮춰 평가하며 열등감에 시달린다. 지금은 그 감정의 실체를 알고 어느 정도 다스릴 줄도 알지만 당시엔 원인을 전혀 몰랐고 객관적으로도 학습에 불리한 조건에 있었으니 자기혐오감이 극대화되었던 것 같다. 이런 사실을 다 아는 지금은 그 시절 힘겨워하던 스스로를 그저 안아주고 싶다.
그래서 교환학생의 마무리가 어땠나 하면 '유대교와 여성 인권' 수업 마지막날이 떠오른다. 히브리어로 된 토라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읽는데다 그걸로 토론까지 하는 수업이어서 전체 수업 가운데 가장 어려웠다. 나는 수업 시간에 자주 입을 다물었고 이따금씩 용기를 내어 토론에 참여하고 나면 수강생들의 반응을 살피기 바빴다. '방금 내 말이 바보같았으면 어쩌지', '전체 맥락에서 혼자 어긋나는 말 한 거 아니야'와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내가 말하고 나면 다들 말을 더 이어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고 열등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궁금한 게 생기면 대부분 수업이 끝나고서 교수에게 찾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내가 묻는 질문이 너무 바보 같을까봐 걱정한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 물어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교수는 친절하게 답해주면서 아까 수업 때 말하지 그랬어, 라고 했고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학기가 완전히 종강한 날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유대교와 여성 인권 수업을 맡은 교수였다. 심호흡을 하고 근처 벤치에 걸터앉아 메일을 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기말 보고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수업이 끝날 때마다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가더군요. 그런 얘기를 수업에서 더 많이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용기 내도 괜찮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