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맨꼭대기에 넓다란 평지가 있다면 어떨까. 거기에 사람이 궁전과 요새를 짓고 오랫동안 산다면? 음식은 어떻게 해 먹고 물은 어디서 구하지? 등산객(적군)이 쳐들어오면 대피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상상만 해도 온갖 종류의 생존 스킬이 필요할 것 같은 그 곳이 실제로 있다. 기원후 66년 로마에 반란했던 유대인들 가운데 900여명이 죽음을 피해 급히 은신한 이스라엘의 산꼭대기 요새 `마사다'다.
아침7시에 일어나 라면에 밥 말아먹고 후다닥 버스 타서 마사다에 도착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여행을 다녀야 할까 불평불만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쯤 케이블카에 올라 그 아찔한 높이에 감탄하고 말았다. 안은 얼마나 더 멋질까 기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시작된 것이다. 자발적 강행군.
라면 촵촵
인왕산(고도 338m)보다 조금 더 높은 마사다(고도 434m)는 기원전 30년유다 지역을 통치한 헤롯 왕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때를 대비해 선조 대제사장 요나단이 만든 요새 마사다를 본격적인 피난처로 개조했고, 실제로 다른 왕조의 공격을 받자 자기 가족을 그리로 피난시키기도 했다. 걱정이 많았던 헤롯은 마사다 안에 각종 옥수수와 콩, 대추야자 등을 쌓아두고 물 저장고에도 물을 가득 채워뒀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만 이렇게 남았다
헤롯이 노파심에 남겨둔 식량과 무기는 로마 군을 피해 도망가던 후대 자손들의 귀한 자원이 되었다. 반란후 영토 수복에 실패하고 군인에 쫓기던 열심당원 유대인들이 마사다를 점령해 약 6년(66~72년) 간 피난 생활을 한 것이다. 이들은 헤롯이 갖다놓은 무기를 장착하고 로마군이 절벽을 올라오려고 하면 활을 쏘아 댔다. 안에 식량과 무기가 워낙 많아 유대인들이 마냥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헤롯의 시종들이 오랜 기간 식량을 관리한 덕인지 저장된 식재료의 병충해 피해도 아주 적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해설 오디오 가이드 헤드셋을 끼고서 식량창고와 물탱크, 유대인들이 종교적 의식을 위해 쓰는 목욕탕과 회당 등을 거닐다 보니 이 안에서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고 씻고 기도하며 생활했을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졌다. 여기 목욕탕(미츠바)은 이렇게 좁으니 몸을 이렇게 접어서 들어갔겠지? 그런 생각들. 고고학자들이 마사다에서 각종 요리와 제빵 기구도 발굴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평지에서 하던 생활을 유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광객 때문인지 까마귀가 많다
그걸 또 열심히 찍는 아저씨
그래서 마사다에 살던 유대인들은 어찌 됐을까? 마사다 함락에 고전하던 로마 장군 실바는치명적인 전략을 짰다. 마사다 주변에 토산을 쌓기로 하고 로마에서 데려 온 유대인 포로를 그 작업에 투입한 것이다. 마사다에 살던 유대인들은 동족인 유대인 포로가 토산을 쌓자 차마 돌을 던지거나 활을 쏘지 못했다고 한다. 로마군인들은 토산 위로 올라가 무거운 돌을 날리고 불화살을 쏴 마사다를 함락시켰다.
마지막 때가 다가오자 열심당원 지도자 엘리에젤 벤 야이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자'는 최후 연설을 한 뒤 모두 자결하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유대 남자들은 처자식을 죽인 뒤 자결했다. 로마 군인이 도착했을 땐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죽어 있었으나 두 여인과 다섯 명의 아이들은 지하 동굴에 숨어있다가 살아남았고, 이들이 당대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어 그의 전쟁사 `유대전쟁사'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마사다 성벽 끄트머리로 나가 보니 로마 군인들이 마사다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망루가 바로 앞에 보였다. 가이드가 소리를 와아아아아 하고 지르니 메이리가 아-아-아- 하고 울렸다. 이렇게 소리가 잘 들리는 거리에서 로마 군인의 존재를 언제나 인식하며살았을 유대인들의 삶이 한없이 불안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로 높다
넓은 곳을 계속 돌아다니니 나중엔 다리가 무지 아파왔다. 한 번도 안 쉬고 다 돌아보는 데에 3시간이 꼬박 걸렸다. 나중에는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어서 더 못 보고 아무데나 걸터앉아 쉬었다.
게다가 하산하는 길엔 케이블카를 타지 말고 내려가 보자는 아빠의 말에(제발!) 호기롭게 그러자고 했다가 나는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다. 등산을 자주 해 본 자는 모두 알 것이다. 등산보다 하산이 더 힘들다는 걸. 막바지엔 다리가 후들거려서 잘 걷지도 못했다. 2시간 가까이 내려와서야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이런 길을 끝없이 걸어내려왔다
지하 1층 식당에 가서 샌드위치 두 개를 해치우니 몸이 나른해졌다. 하지만 숨 돌릴 틈이 없지!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타야 한다. 마사다 관광 안내소에 미리 맡겨 둔 우리 짐을 찾았다. 이젠 이스라엘의 최남단 도시 에일랏으로 간다. 교환학생과 여행을 합쳐 약 4개월 넘게 머물렀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북부는 다시 올라올 일이 없을 것이다. 어쩐지 코가 시큰해졌다.
오후3시15분에 에일랏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중간에 커피 한 잔 사 먹고 계속 달려 오후6시15분쯤 도착했다. 역시 우리가 눈대중으로 거리를 보고 예약한 숙소는 에일랏 버스정류장에서 상당히 멀었고 우리는 또 다시 10키로짜리 가방을 메고 25분 정도 걸었다. 숙소가 작고 예쁜 2층집이어서 그나마 위로가 됐다.
주인장 소피와 만나 인사하고 짐을 푼 뒤 주변 마트에 가 아침으로 먹을 빵과 초코잼, 쌀, 야채, 고기, 데리야끼소스 등을 사서 걸어왔다. 너무 많이 샀나 싶었지만 그래도 3일동안 거의 집에서만 먹을 테니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마지막 날 거의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