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떠나던 날 국제운전면허증 찾아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빠가 현지에서 운전하고 싶다고 엄마를 채근해 이스라엘로 보내라고 했던바로 그 면허증이다.
다행히 한국에 계신 엄마가 곧바로 우편으로 보냈는데, 특송으로 부쳐도 2주가 넘게 걸리다 보니 우리가 이스라엘 북부 여행을 다 마칠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토요일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가 제때 그것을 찾지 못하면 교통이 끊기는 안식일 이틀 동안 예루살렘에 더 머물러야 할 것이었다. 반대로 효율적인 여행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면 앞으로 아빠의 소중한 국제 운전면허증이 이스라엘 땅바닥을 굴러다니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도박을 택하고 말았다. 면허증은 히브리대 기숙사의 아는 지인 앞으로 내일 도착하게 돼 있었는데, 우편물이 들어오는 중간 기지를 찾아가서 그것을 미리 픽업하고 오늘 안에 예루살렘을 나가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심지어 그 안에 지인들 줄 선물을 사서 한국으로 부치고 동예루살렘에 있는 요르단 대사관에 가서 여행 비자를 받자는 계획도 끼워넣었다. 이 여정이 끝나면 이스라엘 최남단으로 내려갈 것이므로 사해 크림 같은 질 좋은 선물을 싸게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될 때 다 하자'는 욕심에, 우리는 사흘에 걸쳐 하나씩 해도 모자랄 일정을 하루에 다 몰아넣는 욕심을 부리고 만 것이다.
아침에 요르단 대사관에 도착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루살렘에서 버스로 30분 가량 이동해 정류장에 내린 뒤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접수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요르단은 이스라엘에 맞붙어 있어서 사전에 요르단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으면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봤을 땐 1~2시간이면 된댔는데, 대사관 직원은 막상 우리가 찾아가니 `앞에 밀린 사람이 너무 많다'며 반나절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다. 심난한 얼굴로 근처 식당에서 피자를 먹으며 시간을 죽였다.
다행히 비자는 오후 2시가 다 되어 나왔다. 우리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혹시나 하고 대사관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이 씩 웃으며 "헤이, 꾸리야!"라고 인사했다. 비자가 나온 것이다.
심난한 마음이었지만 피자는 너무 맛있었다
직원이 겁 준 것보단 빨라서 안도했지만 우리가 당초 계산했던 시간보단 많이 지연돼 있었다. 우리는 라말라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서둘러 잡아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미 오후3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예루살렘 시내 버스터미널에서 다음 목적지인 네베 조하르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오후6시에 있었다. 3시간 안에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터미널로 갈 수 있을지 내심 불안했지만 `예루살렘은 좁아, 트램만 잘 타면 돼'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남은 시간은 100미터 계주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쉼 없는 바통 터치가 이어졌다. 아빠는 지인들 줄 선물을 사러 가고 나는 면허증이 도착한 장소로 조회된 피스갓제브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히브리어를 할 줄 몰라 간판이나 팻말을 읽는 데 오래 걸렸고 낯선 장소에서 우체국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변에 `포스트 오피스'를 열 번 정도 외쳐서야 피스갓제브 우체국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었으나, 면허증은 거기에 없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내가 불러주는 일련번호를 검색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우, 여기 없는데. 벌써 출발한 것 같아!"
직원은 새로운 주소를 적어서 내게 내밀었다. `기밧 샤올'이라는 곳이었고 우체국에서 상당히 떨어진 위치였다. 오후 5시면 문을 닫을 거라는 말도 함께.
그 때만 해도 시간이 오후 3시30분 즈음이었으므로 나는 우체국을 나와 아빠가 있는 기념품샵으로 갔다. 선물을 포장하는 아빠를 도와 빨리 짐을 부치고 함께 넘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겐 이스라엘 전화번호가 없었으므로 우리가 함부로 헤어졌다가는 일정 전체를 그르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잃어버릴 위험도 있었다.
기념품샵에서 100개가 넘는 사해크림을 사 근처 우체국에서 낑낑대며 포장하던 기억이 난다. 동양인 부녀가 왠 크림을 잔뜩 포장하는 모습이 상당히 우습고 이상했을 것이다. 그 때 나도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이게 정말 맞는 방법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4시 20분쯤 낑낑대며 포장을 다 마치고 기념품이 든 박스를 접수대에 올리는데 아차, 운전면허증. 기밧 샤올이 5시 마감이랬지! 나는 접수하려고 줄 서 있던 아빠를 다급하게 불렀다. 아직 접수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그 곳에서 운전면허증을 찾아와야 했다. 아빠는 `예루살렘을 몇 번 다녀봤으니 혼자서도 다닐 수 있다'며 나는 면허증을 픽업해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에서 오후 5시30분에 만나기로 했다. 헤어질 때부터 불안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는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기밧 샤올로 달렸다.
기밧 샤올은 지도에 콕 점 찍혀있듯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택시기사가 내려준 곳은 `기밧 샤올 간 하말라메드 스트리트'라는 길 한복판이었다. 우리로 치면 `잠실 사거리' 가자고 해 아무 사거리에나 떨궈놓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시간은 이미 4시45분이었다. 야속하게 앞뒤로 뻗어있기만 한 그 길을,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른 채 헤매던 기억이 난다. 마침 지나가던 행인에게 내가 "이 근처 우체국에 가야 한다"며 매달리자 그는 `이 길로 쭉 걷다 주유소를 만나면 아랫길로 내려가라'는 신비로운 안내를 해 주고 사라졌다.
아무리 걸어도 주유소가 나오지 않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될 즈음 한국의 에쓰오일을 그대로 본딴 것 같은 모양새의 건물이 나왔다. 히브리어를 몰라도 누가 봐도 주유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자 과연 기밧샤올의 현인이 말해 준 대로 커다란 우체국 그림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거긴 우체국이 아니라 우체국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물류 창고였다. 한국에 있어도 가 볼 일이 없을 법한 곳에, 운전면허증 때문에 가게 된 것이다. 접수대도 민원인 의자도 없이 소포들로만 가득 차 있는 창고를 보고 너무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자니 한 아랍인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 와 무얼 찾느냐 물었고, 일련번호를 건네 주자 10분쯤 뒤에 소포 더미 사이에서 면허증을 찾아다 건네 주었다.
다시 또 버스를 타고 달리고 달려 다시 중앙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혹시 도착해서도 아빨 못 찾는 게 아닐까 불안했지만, 새빨간 1리터 배낭을 두 개나 가진 동양인 남자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서 짐정리를 하고 있는 아빨 발견하고 얼른 달려갔다.
"오오오오! 오오!"
우리는 서로 오오오, 만 반복하며 재회를 기뻐했다. 얘길 들으니 아빠도 그 무거운 가방을 앞뒤로 메고서 트램을 타셨다가 반대 방향으로 가서 동예루살렘 직전까지 갔다가 바깥 풍경을 보시곤 헉 이게 아닌데 하고 내리셨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가 겪은 고충을 한껏 과장하며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최대한 극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그렇게 오후 6시에 네베 조하르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다.
감개무량해 찍은 버스 내부 사진
이제 와 돌이켜 보건대 그 날의 고생은 정말로 할 필요가 없는 고생이었다. 여행에 시일을 정해 둔 것도 아닌데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을 보내는 게 뭐 그리 아까운 일이라고 그런 도박을 했단 말인가. 어느 것 하나라도 아귀가 맞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스라엘에 도착한 첫날처럼 서로를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심지어 그 운전면허증은 실제론 쓰지도 않았다. 물가가 이스라엘보다 두 배는 더 비싼 요르단으로 넘어가면서 차량 렌트비가 도저히 육로여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기 때문이다. 아빠의 면허증은 봉투 겉면조차 뜯지 않은 채 고이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