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엊저녁에 사 온 치즈빵을 커피랑 같이 먹었다. 밖으로 나가 요르단 화폐로 100디나르(약 16만원)를 준비해서 호텔에 돌아오니 와디럼 숙소 주인장 아흐무드가 우리를 픽업하러 와 있었다. 그와 반갑게 인사하고 차에 짐을 실은 뒤 출발하는데 그에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어젯밤 우리에게 지겹도록 여행상품을 권하던 그 호텔프론트 직원이 아흐무드에게 다가와 `사실은 내가 저 관광객을 당신과 연결시켜줬소'라고 거짓말해 중간 수수료를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아흐무드는 이미 내가 부킹닷컴이라는 중개 사이트를 통해 자기네 숙소를 예약한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썩 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쩐지 우리가 체크아웃하고 짐을 내릴 때 그 직원 표정이 좋지 않더라니. 그는 정말 매순간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차량엔 우리 말고도 손님이 더 있었는데 그는 프랑스인 클로이였다. 인사를 나누고 와디럼까지 한 번에 쭉 차로 이동했다. 서로 말없이 바깥만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창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사막을 구경하다가, 중간에 잠시 내려 사진을 찍다가 하며 두 시간을 내리 달려 아흐무드의 베두인 캠프에 도착했다.
아흐무드 차를 타고 사막을 건너갔다
멋진 사막 풍경
캠프는 천막집이나 다름없었다. 천막을 철기둥에 휙 둘러쳐서 작은 집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침대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막의 겨울은 상당히 추웠고 천막 안은 거의 난방이 되지 않았다. 짐을 풀고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바로 메인 캠프로 직행했다.
전체 캠프 중에 가장 따뜻하고 난방이 잘 되는 곳이어서 모두들 자기 직전까지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랍인들이 늘 내 놓는 설탕 세 스푼의 달달한 차를 마시고 클로이와 이야기를 좀 나누니 몸이 노곤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마침 아카바 시내에서 챙겨 온 딸기롤빵이 있어 아빠와 아흐무드와 클로이와 나눠먹었다.
달달한 아랍식 차
천막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아흐무드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를 부르더니 낙타투어 할래, 지프투어 할래 물어봤다. 나는 사실 인도 여행을 다닐 때 낙타를 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꼭 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빠는 낙타를 타 보는 게 처음이라 냉큼 낙타 투어를 선택했다. 낙타몰이꾼이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 그 때까지 사막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낙타몰이꾼은20여분 뒤에 왔다. 쌍봉 낙타라 혹 가운데에 쏙 앉으면 됐다.
전에 탔을 때도 느꼈지만 낙타 타는 건 꽤 무섭다. 낙타가 앉았다가 일어설 때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혹 가운데 앉아있던 사람도 같이 쏠려내려가면서 어어어어 하고 거의 땅이랑 인사하게 되는데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 상당히 무섭다. 물론 그 시간만 지나면 그 다음부턴 또 편안하게 타고 다닐 수 있다.
어서 오시라요
아빠는 처음 낙타를 타 봐서인지 몸이 앞뒤로 출렁거리는 게 적응이 좀 안 된다고 하셨지만 곧 적응하셔서 주변 사진을 열심히 찍으셨다. 엄마 보여줄 거라고 동영상에 사진에 여념이 없으셨다.
무서우신지 낙타 봉을 꽉 잡으심
5분 만에 적응해서 셀카 찍으심
와디럼의 백미는 기묘한 형태의 바위일 것이다.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제멋대로 깎인 바위가 상당히 특이하고 멋졌고 그것을 낙타를 타고 가며 구경하는 것도 낭만적이었다.
한 시간 가량 낙타를 타고 다니면서 밖을 구경하고 캠프로 되돌아왔다. 날씨가 꾸무리해서 별을 못 볼까 봐 걱정을 좀 했는데 역시나, 저녁 먹으러 들어간 사이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비가 온 후에 잠시 나가서 별을 봤지만 사막의 쏟아지는 별은 보지 못했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 게 아쉬웠다.
캠프로 돌아와서 클로이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5시 반 쯤 돼서 저녁식사를 했다. 베두인 전통식사라지만 메뉴는 치킨 마끌루바와 피타 빵, 후무스, 샐러드 등 간단한 아랍식 식사였다. 마끌루바를 평소에도 좋아해 세 그릇 가까이 먹고 티까지 배부르게 마셨다. 너무 많이 먹어서 나중에는 잠도 자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스스로가 좀 미련하게 느껴졌다.
끄앙 마끄로바 넘 맛있엉
차를 마시며 쉬고 있으려니 아흐무드의 고양이 미미가 와서 비비적거리고 놀아달라고 했다.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해서 아빠 무릎에 앉아서 놀곤 했다. 바깥에서 돌아온 아흐무드의 가족들도 캠프로 둘러와 수다를 떨다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다가 했다. 따뜻한 불을 쬐며 미미를 구경하고 노랫소리를 듣는 그 순간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밤 12시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막사 안으로 자러 들어갔다.
애교냥 미미
와디럼에서 보낸 그 밤은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추웠다. 내복 두 개에 후드 두 개, 바지내복 하나 바지 하나 입고 두꺼운 패딩까지 입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졌다. 침대에 담요가 여러 장 있어서 그걸 덮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쉬이 잠에 들지 못해 밖으로 나갔다가 달에 비친 사막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중에도 추위에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아침에 겨우 비척비척 일어났다.
와디럼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오전7시에 있었다. 아침에 허겁지겁 짐 챙겨서 메인 캠프로 들어서니 와디럼 주인장 왈, 오늘 길이 미끄러워서 버스가 안 온단다. 이런! 간밤에 눈이 꽤 많이 내린 모양이었다.
택시를 타느니 하루 더 여기 머물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 추운 막사에서 하루 더 잔다는 게 벌써부터 피로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침식사로 빵과 계란, 치즈, 볶은 콩 스튜를 먹고 달달한 아랍 차를 마신 뒤 떠날 채비를 했다.
아하무드에게 숙소비와 밥값 50디나르(8만4천원)를 지불한 뒤 언제 다시 보자고 작별인사를 했다. 아흐무드는 하늘에 지폐를 비춰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이거 위조지폐야'라고 말했고 우리가 헉 하는 표정을 짓자 `뻥이요' 하고 웃었다. 실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아하무드가 불러 준 픽업트럭은 30분이 지나서 왔고 우리는 그 트럭을 타고 와디럼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