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으로 넘어가는 날 아침에 좀 늦잠을 잤다. 일어나자마자 대강 빵만 먹고 바로 준비해서 나갔는데도 아침 10시가 넘었다. 엄마 선물로 드릴 아이크림을 사서 포장하고 아빠가 남겨두신 유로화를 세켈로 환전해서 출국 수수료를 준비했다. 가방이 너무 무겁고 국경은 너무 멀어서 택시로 국경까지 이동했다.
작고 귀여웠던 2층집을 떠났다
비자를 미리 받아뒀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외국인이다 보니 해프닝이 있었다. 우선 이스라엘 택시기사가 우리를 내려주면서 세금이라며 미터기 금액에서 10세켈을 더 달라고 했다. 급하게 내리느라 더 따지지를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스라엘에서 택시 타면서 세금을 얹어서 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당한건가' 싶어 뒤돌아보니 이미 택시는 떠나고 없었다. 짜증이 났지만 10셰켈이니까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돈을 다 지불하고나서 보니 내 아이폰과 썬글라스가 없는 것이다. 택시 뒷좌석에 두고 내린 것 같아 급하게 영수증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도 않았다. 앞에 지키는 이스라엘 경찰한테 영수증을 보여주곤 전화 좀 해 달라, 나 좀 도와달라 부탁하는데 낭패감이 몰려왔다. 아빠도 옆에서 그걸 왜 안 챙겼냐고 나무랐다.
몇 번을 전화해도 받지 않길래 체념하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 짐을 검색대에 올리는데 아빠의 재킷 주머니에서 내 썬글라스와 휴대폰이 나왔다.
"어, 이게 왜 여깄지?" 아빠는 민망한듯 말했다. 아마 택시에서 짐을 빼면서 서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챙겼는데 그 과정에서 아빠한테 그 물건들이 간 모양이다. 검색대 직원들 앞에서 우스운 짓을 한 것 같아 창피했지만 그 물건들이 그대로 다 있다는 안도감에 기뻤다.(나도 이스라엘에 처음 오던 날 ATM기에서 카드 뽑아놓고 카드 없다고 난리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유전이었던 것이다!)
하이루 요르단
몇 번의 여권심사 절차와 짐 검사를 마치니 `웰컴 투 요르단'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그 곳을 통과하면 그 뒤부터는 요르단 영토인 것이다. 분단국가에서 자라 걸어서 국경을 이동한다는 게 영 생소했는데 언젠가 남북한을 평화롭게 오가게 되면 이렇게 걸어서 국경을 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 넘기의 두 번째 과제는 어마어마한 호객행위였다. 국경을 나오자마자 택시 호객꾼 대여섯명이 달려들어 짐을 뺏으려 하는데 우리는 따로 픽업차량을 예약하지도 않았고 렌터카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 중 한 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 짐을 뺏어다 트렁크에 실은 한 택시기사를 따라 차량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예약한 골든로즈호텔은 국경에서 차로 20분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택시비는 3만원에 가까운 15디나르였다. 이게 적정한 가격이 맞나 의심이 들었지만 남의 나라에서 정보도 없이 차 한 대 안 다니는 국경에 서 있는데 흥정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 국경에서 호텔까지 무사히 온 것을 위안 삼았다.
골든로즈호텔. Booking.com출처
골든로즈호텔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방은 넓고 따뜻하고 좋았다. 아빠는 다리가 아파서 숙소에서 쉬시고 나는 아카바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후6시쯤 호텔로 돌아왔다.
일기에 별다른 내용이 없는 걸 보면 그날 아카바 시내는 볼 게 없었던 모양이다. 기억 나는 것은 아랍어로 된 간판들과 남성들로 가득한 길거리다. 이슬람국가인 요르단은 여성이 혼자 다니는 경우가 잘 없는데 나 혼자 거리를 걷고 있자니 어쩐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길 가다 만난 베이커리에서 치즈를 얹은 전통빵 네 덩어리를 포장하고 숙소 앞 슈퍼에서 인도네시아산 라면 '인도미' 한 묶음과 물을 사서 후딱 들어왔다. 인도미는 유럽 중동 할 것 없이 전세계에서 인기를 누린다. 라면 종주국 일본이랑 한국 빼고.
베이커리에서 산 빵
아빠는 인도미 라면을 생각보다 아주 좋아하셨다. 면은 한국 것보다 꼬들거리고 국물은 인위적인 닭 육수 맛이 났지만 그래도 뜨끈한 라면을 먹는 것 자체가 좋으신 모양이다. 옆에서 맛있게 드시니 나도 덩달아 입맛이 돌았다.
네 봉을 다 까서 배부르게 먹고 믹스커피까지 다 타서 마시고 누우니 편안하니 좋았다. 내일 요르단 내륙 사막인 와디럼을 갈 예정이어서 예약 대행 사이트인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다 마쳤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호텔 프론트에 있던 예멘인 직원이 계속 우리에게 호텔을 통해 와디럼 여행 상품을 예약하라고 채근을 했다. 내가 몇 번이나 따로 예약한 상품이 있다고 했으나 그는 집요하게 우리 방으로 전화를 걸어 강요했고 심지어 픽업 일정을 잡으려고 숙소로 전화를 걸어 온 와디럼 숙소 주인에게 `여기 아시안 관광객들은 우리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며 이만 끊으라는 거짓말까지 했다. 그 숙소 주인은 나를 바꿔달라고 해서 사실 확인을 한 뒤 다시 그 직원으로 전화를 바꿔 시원하게 욕을 했다. 다행히 그 뒤로는 그가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와디럼 숙소 주인이 내일 오후 1시에 호텔로 데리러 오겠다고 해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