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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09. 2021

나의중동여행기37_페트라, 아름답고 위협적인

호객 좀 그만해

아흐무드와 작별인사를 하고 메인 캠프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택시기사가 왔다. 우리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경쾌한 아랍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트럭은 1시간 넘게 달렸고 도중에 택시기사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 눈이 가득 쌓인 거리에서 몇 번 내렸다. 기사는 자기 카메라로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며 우리더러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계속 부탁했다.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며 승객을 내리게 하는 특이한 기사였다. 그는 눈밭에 자기 이름 이니셜을 쓰거나 차랑 같이 기대어 서서 포즈를 취하는 등 한컷 한컷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도 눈 위에 서서 그의 찍사 노릇을 충실히 했다.

눈이 많이 내렸다
노래 부르는 택시기사와 아빠

페트라 근처 사바아 호텔에 내려서 짐부터 풀었다. 주인장이 호주 사람이라 간만에 아주 시원한 영어를 들을 수 있었지만, 숙소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허름했다.

주인장이 여행객에게  도시락을 산 뒤 곧바로 페트라로 출발했다.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페트라 주변 관광 안내소에 있는 안내서를 찾아보며 유적지 정보를 익혀야 했다. 좀더 공부를 해서 왔으면 좋았을걸 아쉬웠지만 안내서에 나름대로 설명이 잘 돼 있어서 최소한의 지식은 얻고 갔다.

페트라에 가까워지자 마을 풍경도 달라졌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도 나온 적 있는 페트라는 기원전 1~4세기경부터 살았다고 추측되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들의 도시다. 나바테아 왕국은 기원후 106년 로마의 침략으로 멸망했지만 그들이 살았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바위를 깎아 만든 거대한 왕궁과 신전이 19세기 탐험가들에 의해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페트라 입구에 있는 신전(알 카즈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호객꾼들과 말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페트라 안에 말을 타고 들어가라는 호객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열댓명의 무리가 우리를 따라오며 공짜다, 한 번만 타 봐라 등등 침을 튀기며 영업했고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벌써 다섯 번이나 말했잖아요 안 탄다고!" 언성을 높이자 친절하게 웃던 호객꾼이 감정 상한 표정으로 얼굴 확 꾸개고  가 버린다. 나중에 만난 한 관광객은 굳이 말 탈 필요 없으니 걸어가면서 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안 타길 다행이었다.

마차 타! 얼른 타!

마침내 페트라로 들어가는 협곡에 들어섰다. 협곡은 시작점에서부터 20분이 넘게 걸어들어가야 할 만큼 길고 위로는 사람 키의 다섯배는 돼 보일 만큼 높다. 이 갈라지면서 생긴 자연 협곡이라는데,  유리한 자연환경 덕에 나바테아인들은 오래도록 자기 영토를 지킬 수 있었다. 로마군인들이 기다란 협곡에 들어서는 순간 위에서 화살이 우수수 쏟아졌다고.

이런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협곡을 빠져나와 '왕들의 무덤'이라는 유적도 만났다. 베두인들이  보물을 많이 발견한 곳이라 보물창고라고 이름 붙였으나 사실은 그 당시 나바테아인 왕과 그 가문 사람들이 죽은 후 안치되었던 묘라고 한다. 거대한 바위 한 쪽을 깎아 만든 왕들의 무덤은 그 자체로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 앞으로 나올 유적에 대한 감동과 기대가 더 커졌다.

왕들의 무덤
건축물 내부는 보통 이렇게 텅 비어있다

다만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유적이 별로 없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왕들의 무덤과 비슷한 유적만 나와서 점점 감동이 줄어들고 유적들에 흥미도 떨어졌다.

게다가 전날 와디럼 캠프의 후유증으로 몸에 한기가 있어서 몸이 슬슬 추운 느낌이 들었다. 피로가 몰려오면서 그냥 숙소로 가고 싶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나와 달리 아빠는 너무 즐거워하고 계셨다. 아빠는 나를 걱정하시면서도 눈 앞에 보이는 유적들이 너무 신기하셨는지 "우리  어떡하냐" 하시면서도 돌아보면 어느 새 유적지 안에 들어가 계시곤 했다.  모습이 아빠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다행히 아빠가 입으라고 준 패딩이 따뜻해서  곧 훨씬 나아졌다. "아빤 춥지도 않고 오히려 걸으니까 다리도 안 아파서 생기가 더 돈다! 너 입고 얼른 기운 차려." 

나는 잠시 양심 없는 딸이 되기로 하고 내 외투를 아빠 것과 바꿔 입었다. 역시 아빠 패딩이 비싸고 좋아서 그런지 몸이 조금씩 온기를 찾았다.


물론 복병은 끝이 아니었다. 주변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무함마드라는 꼬마가 다가와 "동키"를 세 번 외쳤다. 입구의 말 타기 버전에 이어 당나귀 타기 버전인 모양이다.

내가 안 탄다고 하니 그 아이는 다음에(later) 꼭 타라고 약속을 받는다. 일단 쫓을 요량으로 그러마고 했더니 그는 가는 듯하다 금방 다시 돌아와 이젠 탈 거냐고 묻는다. 내가 안 한다고 하니 성질을 버럭 낸다. "왜 나중에 한다고 했어요!"


 참 그건 그냥 하는 말이지 그게 무슨 약속이냐. 어린 녀석이 영어는 잘 하는데 못된 것만 배웠군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해서 손님 하나 더 태워야 할 이유가 있나보다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무함마드는 제풀에 화가 나 가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복병. 허기가 몰려와 점심으로 싸 온 참치샌드위치를 꺼냈는 개가 쫓아와서 달라고 낑낑대는 것이다. 아주 큰 개라 안 주면 물 것 같았다. 이쯤되니 인내심이 바닥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개 보고 저리 가라화를 냈. 


개는 꿈쩍하지 않았고 주변의 아랍인들은 낄낄대며 자기 말 타면 개 쫓아주겠다는 수작을 부렸다. 속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던 적은 이번 여행 통틀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화난 와중에도 참치샌드위치는 꾸역꾸역 개한테 한 입도 안 주고 다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좀 이상한 사람 같다.

걷고 또 걷고

페트라 높은 지대에 있는 사원까지 다 둘러보고 나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망대까지 한 번 올라가 보고 었으나 더 어두워지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아빠와 내가 나갈 채비를 하는데 운 좋게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커플이 있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남자가 하는 말이 속사포처럼 빨라서 잘 알아들었지만 어둑어둑해진 페트라에 홀로 남겨지지 않은 것에 감지덕지했다.


어렵사리 출구를 찾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아빠는 젊은 친구들 걷는 속도를 따라가려니 좀 힘드셨다고, 어두워질까 봐 부지런히 쫓아왔지만 보폭이 좀 빠르더라고 나중에 얘기하셨다. 그걸 눈치도 못 채고 열심히 조잘대기만 한 게 죄송했다.


구를 나오고도 우리는 한참을 걸어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바아 호텔, 오 이런... 그건 호텔이 아니라 싸구려 여관방에 가까웠다.

내부는 이랬다. agoda.com 출처

 바깥이 너무 춥다고 느껴서 숙소에 들어왔는데 정말이지 방은 더 추웠다. 방에 전열기구라고 놓아 둔 그 히터는 바람이 나오는지 마는지 성능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손을 바짝 대야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고, 1시간만 기다리면 따뜻해진다던 주인장 말과는 달리 방은 몇 시간이 지나도 냉랭했다.


우리는 에서 옷을 입은 채 라면을 끓여 먹믹스커피도 한 잔 했다. 너무 추워서 잠이  올 지경이었다. 내일은 지긋지긋한 사바아를 떠나 하루라도 따뜻한 곳에서 자야 할 것 같았다. 지친 몸과 피로를 풀어 줄 따뜻한 숙소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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