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된다. 오늘은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교환학생 생활과 그간의 여행을 포함해 약 5개월 가량의 중동살이를 완전히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날에 엉망인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갈 순 없어!
하루종일 걸어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지만 발은 이미 건너편 큰길에 있는 코스타(Costa) 커피숍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까 걸어올 때 나름 브랜드 커피숍같이 생긴 데가 2층 건물에 있길래 잘 봐 뒀는데 거길 가면 될 것 같았다.
코스타커피는 할리스커피 매장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내부가 깔끔했고 계절 메뉴도 여럿 준비돼 있었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료를 시키려고 메뉴판을 훑었는데 팝콘라떼라는 게 있었다. 26 이집션 파운드. 한국 돈으로 2천원이 약간 안 되는 돈이니 여기 물가로는 꽤 값나가는 편이다.
아까 저녁으로 먹은 치킨이랑 빵이랑 음료수 다 해서 2천원돈이었는데. 역시 브랜드 커피가 백반값이랑 맞먹는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 추세인가보다.
요렇게 생겼다
밖이 보이는 코스타 커피 매장
잠시 후 영화관에서 파는 카라멜 팝콘을 라떼에 띄운, 딱 카라멜팝콘라떼 같은 커피가 나왔다. 동동 뜬 팝콘을 한꺼번에 먹어치우고 커피도 빨대로 쪼로록 마셨다. 어둑해진 밖을 내다보는데 맞은편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까의 불쾌감이 싹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카페에 앉아 내일 하루를 얼추 계획하고 수중에 있는 이집션 파운드를 어떻게 남김없이 쓸지 계산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집으로 돌아간다 생각하니 서운하거나 기쁘거나 하기보단 잘 믿기지 않았다. 사실 이스라엘에 남아 인턴자리를 알아보거나 마침 열리는 대사관 업무 보조원 모집 공고에 지원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잠시 찾아오는 서운함으로 거주지를 구하고 새로운 구직활동을 시작하기에 나는 언어도 돈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학교생활이라는 안전한 틀을 벗어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런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모험할 내적 동기는 별로 없었다.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준비하는 건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것을 회피해 낯선 땅에 남는 것도 좋은 선택지는 아닌 것 같았다.
맞은편 거리 상점에 불이 꺼졌다. 혼자 밤늦게 길 건너 숙소까지 걸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김밥에 라면 한 사발을 먹을 것이다. 이 곳에서 배운 요리와 지식, 삶의 습관을 두고두고 꺼내볼 것이다. 걱정 가득했던 첫 중동 생활과 여행이 무사히 끝나가는 것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