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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16. 2021

나의중동여행기49_오징어야 안녕?

아라비아해의 멋

일기에 쓴 대로 브리치즈와 크래커, 과일, 피스타치오 요거트를 아침으로 먹었다. 모짜렐라치즈에 설탕을 올린 크나파 한조각도 커피와 함께 곁들였다. 입맛이 돌면서 어제보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침 식사

수영복과 수건을 챙겨 오전10시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 왓츠앱 메시지가 도착했다. "회색 차야. 준비되면 와."


회색 차는 로비 바로 앞에 정차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창이 내려왔다. 그는 덩치가 아주 큰 아랍 스쿠버였다. 영어를 잘했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다이버는 영어로 말할 때는 나긋나긋했지만 점심용 샌드위치를 사러 가게에 들렀을 때는 아랍어로 목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계란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너무 목소리가 커서 나도 모르게 귀를 막을 뻔했다.

 "쏘리. 여기선 다 이렇게 말해." 다이버는 멋쩍어하며 샌드위치 두 개를 차창 너머로 받았다.

슝슝 차 타고 간다

차는 30분을 달려 항구에 도착했다. 바닷내가 가까워질 무렵 아라바아해가 보였다. 날씨가 맑았다. 차에서 내리니 길가의 고양이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먹이를 달라고 야옹야옹 다가왔다.

야옹

다이버가 보트를 하나 끌고 오더니 좀 멀리 나갈 거라고 했다. 일행이 아무도 없고 나 뿐이라는 게 약간 무섭게 느껴졌지만 여기서 돌아가긴 아쉬웠다. 여차하면 수영해서 선착장으로 돌아온다는, 말도 안되는 계획을 세우며 다이버의 보트에 올랐다.

보트는 이렇게 생겼다
항구를 노니는 물고기들

보트는 거의 바다 한가운데에 정박했다. 다이버가 먼저 숨통을 메고 바다로 뛰어들더니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홍해에서 첫 스쿠버를 한 뒤 베트남과 코타키나발루에서 두 차례 더 했지만 첫 입수는 언제나 두렵다. 물 속에서 잘못되면 어쩌나 무서워서 잠시 망설이는데 다이버가 괜찮다며 천천히 해 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바다 안으로 들어가 몇 번 호흡을 하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아라비아해의 스쿠버다이빙은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는 묘미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날은 거북을 볼 수 없었다. 다이버가 거북 올 때까지 10분만 더 기다려 보자, 조금만 더 기다리자 한 게 1시간이 다 되었다. 내 입장에선 바닷속에서 더 놀 수 있으니 좋았다. 물고기떼가 비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예쁘게 흔들리는 산호와 말미잘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거북은 못 봤지만 색깔이 바뀌는 갑오징어는 만났다. 두 녀석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약간 각을 보는 것같이 하더니 팽 하고 도망가 버렸다.

⬆️요렇던 오징어가 ⬆️요렇게 바뀐다

밖으로 나오니 추위가 엄습해 왔다. 다이버는 보트를 항구에 정박하더니 뜨거운 물 호스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으로 샴푸도 하고 옷도 배 뒤에서 후딱 갈아입었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다이버가 사 온 샌드위치까지 먹고 나니 몸이 노곤해졌다.


"아랍 식사 해 볼래? 근처에 맛있는 식당 있어."

샌드위치로는 배가 안 차는 걸 알았는지 다이버가 즉흥 제안을 했다. 그를 따라 작은 식당에 들어가 커리와 라이스 등을 시켰다. 다이버는 자기가 혼자 살고 있고 최근에 러시아에 놀러갔다 왔다는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밥에 정신팔려 그 이야기를 다 듣진 못했지만 반응은 열심히 해 줬다.

다이버와 함께 먹은 밥

차에 오르는데 또 다시 제안하는 다이버.

"바로 호텔 갈 거 아니면 시내 구경 시켜주려고 하는데."

정오가 훌쩍 지났는데 시내투어? 너 일 안 하냐?

삶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가 싶었지만 운전도 못하는 내게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바쁘지 않으면 부탁할게!"


나중에 알고 보니 다이버가 구경시켜 준 곳은 거의 한나절 시티투어 코스였다. 오만 술탄 카부스의 의전용 궁전과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무스카트 항구와 어시장, 무트라 시장까지. 3시간이 넘는 코스였다. 관광객도 많지 않아서 사진을 찍어주고 길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해가 질 무렵 그가 '사랑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을 땐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라는 '러브 브릿지'를 소개해 주며 거길 걸어보자고 했는데, 그냥 구경삼아 차에서 내려서 같이 걷다보니 음? 이거 분위기가 어째 이상하다?


말 없이 나란히 그 다리를 걷는데 왜인지 다리 위엔 연인들 뿐이었고 나는 점점 마주오는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게  불편했다. 슬슬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 즈음 다이버가 "피곤하냐. 얼굴이 안 좋다"며 걱정했다. 응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거 같애.

서둘러 호텔로 튀튀

차는 금방 호텔에 도착했고 다이버는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자기가 이제 시내의 맥줏집으로 갈 건데 놀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것, 또 하나는 내일 함께 바다거북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아까 밥 먹을 때 내가 바다거북 보러 지방으로 내려갈 거라고 말했는데 자기가 내일 쉬는 날이라 운전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차를 끌고 당일치기로 보러 가면 거북을 보고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다이버는 제안했다.


솔직히 렌터카 없이 수백키로미터를 이동한다는 게 마음에 부담이 많이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러브 브릿지를 한 번 건너본 입장에서 그와 마냥 친구로 지내기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고 이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안해 줘서 고마워, 근데 난 혼자 갈 것 같아. 오늘 고마웠어!"

다이버에게 원래 주기로 했던 46리얄에서 4리얄을 팁으로 더 얹어서 주었다. 오기 전엔 6리얄도 더 주기 싫었는데 다이빙이 끝나고 나니 하루를 오롯이 다 써 준 것이 고마워 절로 돈을 얹게 됐다.


호텔로 되돌아오니 마음이 심란했다. 이제 내일부턴 또 어쩐담. 오만 동북부지방 '라살진즈'(Ras al Jinz)로 내려가 바다거북이 산란하는 모습을 보싶었지만 차 없이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라살진즈까지는 차로 240km를 가야 하는데 거의 서울~구미 거리(250km)쯤 된다.

대중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곳에서 택시로만 그 거리를 이동하면 차비가 30만원 넘게 나올 것이다.

라살진즈 거북이 생태구역 가는 길.

혼자 다닐 여건이 안 될 땐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게 상책이다. 검색해 보니 라살진즈까지 가는 상품은 없지만 중간 행선지인 티위(Tiwi)까지 가는 상품은 있었다. 일단 이걸 신청해서 무스카트를 벗어나면 중간 행선지에서 다시 라살진즈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만의 산속 계곡을 체험한다는, 좀 특이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일단 신청하기로 했다.

중간에 '티위'가 있다

여행 와서 잘 놀아야 한다는 강박에 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일기에도 이렇게 썼다.

"차 없이 처음으로 수백키로미터 떨어진 지방에  내려가는데, 괜한 호기로 헛짓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 좀 된다. 비싼 돈 들여 외국 왔다고 어떻게든 재밌게 놀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것을 잘 달래며 즐겁게 편안하게 있다가 가고 싶다."


유심데이터 쓰는 법을 마침내 알아냈다.

오만은 3G 환경인데 내 휴대폰은 LTE 환경으로 맞춰져 있어서 연결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3G 기지국밖에 없는 나라에서 LTE 기지국을 계속 찾았으니 연결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3G로 사용 모드를 바꾸니 바로 연결이 쭉쭉 됐다. 휴! 이젠 길 잃어버려도 덜 무서워할 수 있어.


오늘은 전날 신청해 둔 여행상품을 체험하는 날이다. 원래는 오만 여행의 목적인 바다거북 생태구역 `라 살 진즈'(Ras Al Jinz)로 곧장 가고 싶었으나 내겐 차가 없었고 무스카트에서 250km 떨어진(약 서울~구미 거리) 도시를 혼자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때 웹서핑하던 손가락에 걸린 것이 오만의 유명 계곡 `와디샵' 체험 상품이다. 라 살 진즈로 가는 길 한가운데쯤 위치한 자연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식사를 하는 짧은 여행상품이었다. 그 상품을 이용하면 픽업 차량으로 중간 지점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물놀이와 식사 포함이라니 일석이조 아닌가!

가운데 '티위'(Tiwi)가 계곡이 있는 지점이다

어제 빨아서 말려둔 수영복을 주섬주섬 챙겨서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오늘부로 사흘 간 무스카트를 떠날 것이기 때문에 픽업차량이 오기 전에 체크아웃도 마쳐야 했다. 첫날 도착할 때 호텔직원에게 빌린(=택시기사에게 삥 뜯긴) 2리얄을 갚고 짐을 다 빼서 소파에 앉았을 즈음 호텔방에 빨아서 널어 둔 헝겊 생리대가 생각났다.


생리 시기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쓸 일이 있을까 해서 빨아둔 건데 그걸 그대로 두고 오다니. 올라가서 가지고 오려 했으나 때마침 도착한 픽업차량이 밖에서 뛰뛰 경적을 울렸다. 방키를 받아다가 다시 올라가서 생리대를 가져오기엔 시간이 많이 지체될 것 같았다. 방을 청소하는 직원이 그걸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그 상황을 생각하니 나도 괜시리 웃음이 나고 미안하기도 했다.


픽업차량에 오르니 백인 할머니 네 명과 할아버지 한 명, 50대로 보이는 라틴계 부부 한 쌍이 타고 있었다. 차량 맨 뒤에 앉아 음성 가이드가 나눠주는 이어폰을 끼고 오만의 역사를 듣고 있자니 잠이 솔솔 왔다. 음성 가이드는 비교적 정확한 타이밍에 차창 너머의 풍경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석유를 발견하게 된 계기, 오만의 근대화 과정 등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차를 탔다
슝슝 달리는 봉고

다만 오디오 가이드가 말끝마다 "카부스 술탄 덕분에 우리 나라가 이렇게 잘 산답니다"(By the rule of Sultan Qaboos, our country flourished)라고 덧붙이는 건 좀 생경했다. 이렇게 대놓고 술탄 칭찬을 한다고? 여기 독재정권인가?


사정이 궁금해 찾아보니 과연 그렇다. 오만 사람들에게 카부스 술탄은 한때 아랍 최빈국이었던 오만을 현재의 동유럽국가 수준까지 끌어올려 준, 근대화의 주역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한편으론1970년 영국 도움으로 술탄 자리에 오른 뒤 50년 동안 입법권과 사법권, 행정권을 모두 쥔 독재자로 지냈으니 국민들이 함부로 까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11년 아랍 전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 때도 즉각 경제정책을 펼쳐 여론을 잠재웠다고 한다.


깜빡 잠이 들었을 즈음 운전기사가 봉고 문을 열며 내리라고 했다. 캐리어는 내버려두고 따로 챙긴 수영복 짐을 챙겼다. 차에서 내리니 짐을 실은 당나귀들이 보여 요르단에서 호객행위를 당했던 안 좋은 추억(말 타! 당나귀 타!)이 떠올랐지만 다행히 우리는 조각배를 타고 들어가게 돼 있었다. 를 탄 할머니들은 신이 나는지 "호오우" 같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배에 내려서도 한참 더 들어가 계곡을 발견했다. 물이 맑았고 작은 물고기들이 여럿 보였다. 날씨가 좋아 안을 노닐기도 딱이었다. 다만 어느 계곡이 그렇듯이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 있었다. 이런, 이스라엘 자연온천 샤흐네에서 큰일날 뻔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얕은 물은 이렇고
깊은 물은 이렇다

그 때 터득한 방법은 물안경을 끼고 자유영을 하다가 자세가 흐트러진다 싶으면 몸을 뒤집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생존수영 가운데 기초인 입영(서서 하는 수영)을 못한다. 한국식 수영강습이란 자고로 자유영 배영 접영 등등 겨루기식 수영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여 깊은 물 위에 떠 있으려면 반드시 자유영이든 배영이든 해서 어디론가 나아가야만 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달이 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얕은 계곡물만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안쪽에 폭포가 있다는 소식에 그만 가 보고 싶어진 것이다. 먼저 다녀온 할머니들이 중간중간 수영해야 할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그것을 유념하며 수영했다.


어찌저찌 중간지점까진 잘 다녀왔는데 폭포가 나오기 전에 물이 아주 깊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전에 배운 것처럼 수경을 끼고 자유영을 해서 그 지점을 지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수경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말았다. 시야가 흐려지면 수영을 못하게 되는, 너무나 수영장 한정 수영인인 나로서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긴장하며 몸이 무거워지더니 가라앉기 시작했다. 원래 세운 원칙대로라면 배영을 해야 하는데 패닉이 와서 몸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죽을 지도 몰라.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물을 박차고 나가 수면 위로 올라가 `헤엘(프)'하고 외치고 다시 꾸루루룩 잠수하고 다시 발장구를 쳐서 `헤엘(프)'를 외치고 다시 꾸루루룩 가라앉는 일을 반복했다. 주변에 있는 유럽인들은 수영을 너무 잘하는 나머지 쟤 왜 저래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마지막 헤엘프에서 거의 헤밖에 못하고 가라앉으려던 순간에 어떤 사람이 내 팔을 잡더니 끌어냈다. 팔에 이끌려 가다 보니 발을 딛을 수 있는 바위가 나왔다.

바닥이 안 보이는 물

"괜찮은거야? 바닥이 좀 깊긴 하지."

콜록거리는 나를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운 마음에 올려다보았는데 한 라틴계 남자가 말로는 괜찮냐면서도 낄낄 웃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유럽인들도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난 것이 다행이고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너무 창피하여 숨고만 싶었다. 으이구 어디 가서 수영한다고 하질 말아라!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탱큐, 탱큐 하고는 되돌아서 가려니 이번엔 유럽인 여자애가 가까이 온다.

"혼자 갈 수 있는거야? 수영할 수 있어? 내가 같이 가 줄게."

아니, 아니야 괜찮아. 나 너무 창피해 지금.

"응, 할 수 있어. 저기 얕은 데로 갈게."

그 여자아이는 걱정된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결국 중간쯤까지 바래다 주었고 나는 수영을 1년 반 배웠으나 다른 사람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수영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물에 처박고 싶었다.


얕은 물에 도착해선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물고기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얕은 데에 오니 심신이 안정되어 훨씬 재밌게 놀 수 있었다. 그래도 멀리서 깊은 물로 풍덩 다이빙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너무 부러워졌다. 한국에 돌아가면 생존수영을 배우리라.

요즘엔 그래도 초등생 대상으로 생존수영을 가르치는 곳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초등생 여러분 저처럼 창피 당하지 않게 많이 배워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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