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과 환患
忠은 맹목적 추종이나 무조건적인 반목이 아니다. 또한 忠은 누구를 돕기 위해 행하는 단순한 이타적 행위도 아니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이기적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득이 되거나 해악이 될 뿐, 자신의 마음을 저울의 중심에 놓고 목이 달아나도 끝내 흔들리지 않는 고도의 철학적 행위다. 忠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600여 년 전 忠의 화석이 살아 숨 쉬는 경북 영천의 임고서원으로 떠나 보자.
그날 밤, 그가 쓰러짐으로써 비로소 단심가丹心歌는 완성되었다.
“나리께서는 어찌하여 말을 거꾸로 타고 계십니까?”
마부는 조금 전까지 그가 마신 술이 너무 과하여 그런 줄로만 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이라 맑은 정신으로는 죽을 수 없어 술을 마셨고, 흉한이 앞에서 흉기로 때리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여 돌아앉았다.”
마부는 그 말뜻을 쉬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을 계속 몰았다. 얼마지 않아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난 후 그 남자는 다리 위에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옆에는 그의 머리에서 새어 나온 희멀건 뇌수와 찢기어진 몸에서 터져 나온 선혈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었다. 주검을 확인한 괴한들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철퇴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이 참혹한 광경은 1392년 음력 4월 4일 밤, 막 그믐을 지난 음산한 달빛이 개성 선죽교 위를 비추고 있는 살인사건의 현장이었다. 철퇴에 의해 참살된 그 중년의 남자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감지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였다. 그날 밤 그가 죽음으로써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丹心歌는 비로소 완성되었다.
싸움에는 졌지만 역사에서는 승자가 된 충절과 효행의 남자 포은圃隱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술잔을 마주한 이방원과 정몽주는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에서 목숨을 건 랩 배틀을 벌였다. 이방원이 먼저 부른 랩의 첫 소절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넝쿨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였고, 포은이 응수한 랩의 마지막 구절은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였다. 점잖은 말들의 성찬이었지만 이들 랩의 제목은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요지는 각각 ‘내 말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와 ‘네 말 못 듣겠으니 차라리 죽여라’였다. 랩이 서로 충돌하자 그들의 목숨도 서로 충돌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결국 포은의 목숨이 달빛 아래 쓰러진 것이다. 그날 밤에는 이방원과 하여가가 승리하였으나 역사에서는 정몽주와 단심가가 승리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 부래산 자락에 소재한 임고서원臨皐書院은 포은 선생의 충효와 학덕, 그리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고고한 자태로 우람하게 솟아오른 은행나무와, 수줍게 서원의 담장 너머를 엿보는 진분홍빛 배롱나무가 객을 맞이했다.
그는 효자였다. 다만 충신의 이름과 학덕의 경지에 가려졌을 뿐이다. 10년 동안 부친 묘소에서 삼년, 또 어머니의 묘지에서 삼년상을 치른 효행을 기려 공양왕은 그의 마을에 ‘효자리(孝子里)’라 새겨진 비석을 세우게 했다. 그 시절에 어디 그것만으로 임금이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부모를 쳐다보는 마음이 그토록 아름다웠으면 자식을 내려다보는 마음 또한 한없이 따뜻하였을 터, 중국으로 사행 떠났을 때 두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애처롭다. 그만한 관직에 있으면서도 자녀의 입신양명에 손길조차 주지 않으려는 매정한 아비의 마음을 보니 자식들 또한 애처롭다.
憶宗誠宗本兩兒 종성 • 종본 두 아이를 생각하며
百念俱灰滅 온갖 염려 모두 사라질 때에
關心只兩兒 마음 쓰이는 것은 오직 두 아이 뿐
嵋離慈母養 어미 보살핌 면하기 전에
已誦古人詩 옛사람 글귀를 이미 외웠지
積善吾何有 내가 무슨 적선할 일 있겠는가
揚名汝自期 양명할 일은 너희가 각자 힘써라
秖思衰老日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늙어서
及見長成時 그때서야 너희들의 장성함 보게 되리라
忠의 길은 결국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길, 죽어가는 순간 그의 뇌리에 남겨졌을 고뇌의 무게
그의 죽음은 구왕조의 몰락과 신왕조의 탄생 사이에 끼어 있었다. 변치 않는 마음은 죽어가는 고려의 제삿상에 올려졌고 몸은 갈가리 찢어져 조선의 생일상에 바쳐진 그. 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는가. 랩 배틀이 끝난 후 이방원이 포은에게, "당신이 말하는 그 임은 누구요?"라고 묻자 그는 "임금일 수도 있고 나라일 수도 있지만 그 둘은 하나요"라고 대답했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니 그는 결국 왕조를 떠받치고 있는 나라의 백성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충신’의 이름이 아무리 찬란한들 그것은 다만 후대가 붙여준 영광의 칭호일 뿐 지금 당장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는 그도 한없이 두려웠을 것이다.
글자를 보라. 충忠은 자신의 마음을 중심에 두는 일이고 환患은 마음의 중심이 두 개여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일이다. 왕조에 대한 신하로서의 마음이 충忠이라면 남겨진 가속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근심은 환患이라 할 수 있을 터, 아무리 높은 학덕과 고결한 인품을 지녔던들, 또한 아무리 忠을 지키려는 그의 마음이 굳건했던들 꺼져가는 목숨 앞에 어찌 환患의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았겠는가. 더군다나 나라가 붙드는 고관대작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식들의 입신양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였기에 막상 죽어가는 순간에는 忠을 후회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결한 공인이었다. 비록 음산한 달빛이 비치는 다리 위에서 비명에 간 그였지만 그의 곧은 마음은 우리 역사 속에서 여전히 푸르디 푸르다.
대장동 게이트니 하며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공公의 탈을 쓰고 사私를 앞세운 추악한 자들이여, 용인은 대장동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다가오는 이번 휴일에는 그의 묘소에 들러 한 번 참배하기를 권한다. 날씨가 궂더라도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