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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Jan 04. 2022

<소나기>와 <인연>

나도 그녀를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자칫 칼바람에 베일세라 해조차도 서산 너머로 일찍 귀가하는 계절이다. 석양 노을에 물든 강변의 갈대는, 아침 해가 떠서 삭풍을 몰아낼 때까지 밤새도록 파르르 떨어야 할 것이다. 겁먹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북극한파니 뭐니 하지만 아직 강물은 깡깡 얼지도 않았고 바람결에 그리 독한 기운이 실려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미 동지가 지났고 해도 바뀌었으니 계절은 머지않아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봄이 달려와서 겨울을 몰아낼 때까지는 우리도 파르르 떨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봄 햇살이 이렇게 그리운 모양이다. 그것 말고도 그리운 것은 또 있다.


  그때도 겨울이었다. 그해 12월 어느 날, 그녀와 나는 이별을 앞두고 마주앉았다. 기약 없는 이별이지만 그리 애달픈 자리는 아니었다. 하긴 애달픈 이별이 아니어서 기약이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가족이 아닌 것은 확실하고, 연정 품고 서로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었으니 연인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친구라 하기에는 왠지 어색한, 그야말로 애매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사전에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이 없을 리는 없다. 굳이 그때 내 마음을 말하자면, <소나기>에 불어난 개울을 건너기 위해 윤 초시 댁 증손녀를 업고 징검다리 건너던 소년의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또한 피천득이, 청순한 아가씨로 성장한 아사코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런 <인연>을 꿈꿨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이별이라고 해봐야 아주 가끔씩 만나 차 한 잔 같이 마시던 것을 못하는 정도의 아쉬움뿐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때 나는 살 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세안 튜브를 건네며 잘 가라고 했다. 나는 그 선물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열 살 정도 아래의 직장 동료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느 자리에선가 무심코 내뱉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부터였다.


  “저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웃는 엄마이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늘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대부분 웃고 있었다. 다만 화사하게 웃느냐 은은하게 웃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은 단순한 말치장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결심이 담겨진 철학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언제나 웃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웃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물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아이 앞에서만 웃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두 번은 몰라도.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엄마의 건강한 생각과,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해내고 있는 그녀에게 내 마음의 눈길이 쏠렸다. 생각해 보니 그때 내 삶은 웃음이 메말라가던 시기였다. 내가 자초한 일이기는 해도.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나는 가끔씩 그녀와 만나 차를 같이 마셨다. 처음에는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대화의 즐거움까지 더해져 나는 점차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만 휘몰아친 폭풍우였을 뿐 밖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위장되었다. 그렇게 내 심장과 가슴 근육과 살갗 사이에 꼬깃꼬깃 은폐되어진 내 마음을 그녀가 알아채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중국으로 떠나는 그날까지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한국을 떠났고 그것으로 그녀와의 인연은 끝인 줄 알았다.


  나는 상해에 둥지를 틀었다. 낯선 데다 독하기까지 한 그 나라에서, 더군다나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힘겨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환한 웃음이 그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예전처럼 차 한 잔 같이 마시는 즐거움을 위해 바다를 건널 수는 없었으니. 또한 나는 먹고 살아야 했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진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그녀와 남편 사이에 큰 불화가 생겼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것도 나로 인해서. 사연인 즉, 그녀가 내게 보내기 위해 쓴 메일을 우연히 보게 된 남편이 우리 관계를 의심해 만들어진 불화였다. 그때까지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 메일은커녕 문자조차 주고받은 적 없었으니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 메일을 받아 보지 못했으니 어떤 내용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워낙 좁은 바닥인 데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그녀 남편과 나는 서로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준수한 외모와 좋은 품성, 거기에다 업무능력까지 겸비한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수습해야 할 사태는 크고 중했다.


  혼자서 깊이 생각했다. 실체적 진실을 떠나 지금 그가 느끼고 있을 배신감과 상실감에 대해, 또한 그녀가 맞닥뜨린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대해. 그런 것들의 크기와 깊이와 무게는 메일의 내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슴 아팠다. 그러나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린 데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손 이 판국에 메일 내용을 묻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용을 추측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메일에 불륜을 예단할 수 있는 ‘사랑’이나 그와 연관된 불편한 어휘들이 들어설 여지는 없었다. 그간 우리는 단 한 번도 사랑의 언어는커녕, 그윽한 눈길과 연정 품은 손길조차 주고받은 적 없었으니. 또한 우리는 단 한 번도 ‘사랑’ 따위의 일로 심각해 본 적 없었으니. 또한 나는, 단 한 번도 내 마음속에서 피어난 소년과 피천득의 마음을 표출한 적 없었으니. 그러니 메일이라고 해봐야 그저 낯선 나라에서의 낯선 삶에 대해 안부 묻는 것이, 또한 앞으로의 삶에 대해 격려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니.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는 이조차도 불쾌하고 불편했을 터, 그리하여 도대체 어떤 사이기에 이 짓거리냐고 그녀를 추궁했을 터, 또한 그녀는 그녀대로 결백을 내세우며 항변했을 터. 전지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맞지만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가 틀렸다고 목청 돋울 일이다. 그러나 명백한 물증을 앞세운 남편의 거센 공격 앞에 은장도를 꺼내들지 않는 한 그녀의 강변은 한낱 변명으로 치부되기 쉬운 형국, 이 불화의 발화점은 나였다. 숨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그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미안합니다…….”


  “...... .”


  나는 말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당장 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 .”


  이번에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지금 어떤 마음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턱대고 오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변명이나 거짓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전화상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으니...... .”


  “만나지 않겠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한 번 만남을 거절했다. 한편으로는 다소 마음이 놓였다. 만약 그가 우리 관계를 진짜 ‘불륜’으로 단정하고 있다면 자신이 쫓아와서라도 만나려 했을 터이니.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상으로 요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의 부인인 줄 알면서도 사적인 만남을 수차 요청한 내가 잘못한 일입니다. 부인은 식사 한 번, 차 한 잔 같이 하자는 내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잘못 이외에는 어떤 비난 받을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는 부인과 연락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불쾌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용서를 구하니 이제 노여움 푸시기 바랍니다.”


  진심을 다해 사과했지만 그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즈음 누군가가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해 말했다. “그 자식은 유부녀를 집적대다가 남편에게 발각된 파렴치한!”이라고. 그래서 나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사람에게 천하의 ‘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나의 내상(內傷)도 크고 깊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또한 믿었던 만큼 나를 헤집었을 것이니.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는 않았다.


  세월은 거센 비바람을 몰고 다녔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흐르자 세월의 풍랑에 난파된 내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래도 나는 살기를 원했으므로 부서진 심신의 조각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 다시 짜 맞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레고(lego)질 하는 것과 비슷해서 ‘후다닥’이 아니라 '꾸역꾸역'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뚜기는 자빠지자마자 발딱 일어났지만 나는 자빠지고 나서 안간 힘을 다해도 다시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사이에 나는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는 게 더 힘들었다. 아내와는 이혼한 것이다.


  세월은 지났지만 힘들 때마다 그녀의 환한 웃음이 그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그녀의 미소인지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인지 잘 모르겠다. 보고 싶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은 강력한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인 듯했다. 중견 간부가 되어 있을 그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이십 년 만의 해후였다. 천둥번개가 발악하던 밤이었다.


  “여전하시네요.”


  움찔했다. 그녀는 내 외양을 두고 말했겠지만 나는, 자신을 향한 내 마음이 변치 않고 여전하네요, 라고 하는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미소와 미모도 여전했다. 그러나 여전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왠지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대화 내내 뭔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편치 않았다. 오가는 말은 즐비했지만 두서가 없었고,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말을 토해 내야 하는 것 같아 머리는 헝클어지고 목은 칼칼했다.


  “그런 생각 마시고...... . 그때 워낙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서...... .”


  ‘가끔씩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 말을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실 그 말을 해 놓고도 나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가 놀랐다. 잘못된 말인 줄도 알았고 말 그대로 ‘가끔씩 볼’ 의도도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예상치 않았던 어색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가다 불쑥 새어나온 말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의 반응은 온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완강한 거부가 섭섭했다. 마치 이런 일을 예상하고 아예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그날 나는 ‘그녀’가 아니라 ‘추억’을 만나기 위해 나선 걸음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련했던 추억’이 아니라 ‘현실의 그녀’를 만났던 셈이다. 그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내 섭섭함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깊은 침묵으로도 교감할 수 있고 잠시 스치는 눈빛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지난날의 추억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후 그녀와 나는 몇 번의 의도치 않은 카톡 대화가 있었다. 그때 내 카톡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설펐다. 그녀와 이니셜이 같았던 선배에게 보낼 톡을 바로 아래 리스트에 있는 그녀에게 보낸 것이다. 또한 예민하기 짝이 없는 싼 휴대폰 덕분에 몇 번이나 헛 카톡질했다. 이상하게도 대상은 그녀였다. 그녀는 마치 내가 추근대는 줄 알았든지 급기야는 대화방을 나가겠다는 문자를 보내고는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도 내 휴대폰에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미소가 그립다. 내 마음속에서 피어났던 소년과 피천득의 마음은 지울 수 없기에. 피천득은 <인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천둥번개가 발악하던 그날 밤, 나도 그녀를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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