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속의 고목나무 Feb 07. 2022

빼재(秀嶺) 소고

같은 재주, 다른 쓰임새

나는 그저 틈나고 마음 내킬 때 두서없이 이산 저산 휘젓고 다니는 아마추어일 뿐 전문 산악인은 아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대간꾼들이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GPS 장비나 등산 전용 APP 같은 것에 그다지 눈길 줘본 적 없다. 그러니 간혹 산길 중간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헤매기도 한다. 어차피 우리 강토의 등줄기를 걷는 것이 발품 팔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인 이상, 거기에 굳이 디지털의 편리함을 섞어 아날로그의 순혈 가치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은 내 생각 때문이다. 또한 내 의지가 아니라 디지털 장비에 이끌려가는 듯한 야릇한 구속감도 싫다. 고장이라도 나면 졸지에 저장된 전화번호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은 낭패감과 황당함은 또 어쩔 것인가. 그래서 나는 비교적 원시적인 방법으로 산길 찾아다닌다. 전문 산악인들 보기에는 남사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그럭저럭 할만하다.


그날도 그렇게 뒤적이며 산길 찾고 있었는데 좀 이상했다. 산행길 나서기 전 대략의 지형 파악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니 날머리의 지명이 뒤죽박죽이다. 신풍령이라고도 하고 빼재라고도 했다. 언뜻 와 닿지 않아 뭐가 정확한지, 또한 그 뜻이 뭔지 궁금했다. 육십령에서 덕유산 돌아 막상 그쪽으로 하산해서 보니 고갯마루 표지석에는 신풍령도 아니고 빼재도 아닌 수령秀嶺이라고 적혀 있었다. ‘빼어난 고개’라는 뜻일 터다. 아마 옛날에는 순수한 우리말로 줄여 빼재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날 워낙 파김치가 된 탓에 주변 경관을 여유롭게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구절양장 굽은 길 내려오면서 마음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희멀건 눈길로 봐도 그곳은 빼어난 산세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엇이든 빼어난 것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모양이다. 그도 마찬가지다.


작년 가을 그를 만난 것은 사십여 년 만이었다. 그의 진료실에서였다. 의과대학에 진학했던 그는 내과의사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의 이력과 근황을 모를 리 없지만 둘 사이에는 흐른 세월 만큼의 면구스러움이 있어 어린 시절처럼 허물없이 연락하지는 않고 살았다. 알고 보니 그는 내 고향 친구 P와 이웃 이상의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조우할 수 있었다.


나를 반갑게 맞이한 그의 첫 일성은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추억을 더듬는 것이었다. 나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추억했다. 그는 단아하고 품위 있는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또한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 있었다. 어렸을 적 만면에 늘 잔잔하게 번지던 그의 미소가 켜켜이 퇴적되어 인자하고 중후한 의료인의 바탕색이 된 듯했다. 나도 참으로 반가웠다. 위 내시경을 마친 후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학창 시절의 그를 회상했다.

 

고교 시절 내내 우리는 같이 문예반 활동을 했다. 특히 그의 글재주는 빼어났다. 당시 그 활동을 이끌었던 지도 선생님은 영남대 교수를 역임한 이기철 시인이었다. 80년대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문인 중 한 분이다. 그때 우리는 매년 가을에 시화전을 여는 게 가장 큰 행사였는데 선생님이 유독 그의 글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기억이 선하다. 말 수 적은 선생님도 늘 온화한 미소로 그를 칭찬하곤 했다. 반면 건들거리면서 놀기 좋아하고 글재주 뻔해 짜깁기에만 능했던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열패감에 질투심을 느꼈던 기억도 새록 떠오른다. 그는 늘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글솜씨와 지적 역량은 따뜻한 마음씨와 더불어 아무리 숨긴 들 숨겨질 수 없는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재능이 틀림없었다.


또 한 명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을 뿐 직접적으로는 나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그와 동문인 내 친구를 통해 그의 영민함과 출중한 필력을 익히 들었으니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학교 담장을 넘어 인구에 회자되던 뛰어난 인물이었다. 특히 친구가 많이 칭찬했던 그의 필력은 세월이 흘러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된 그가, 차디찬 감옥 바닥에서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는 <항소이유서>는 아직까지도 명문장의 대명사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괴테가 그랬던가. 세상은 유능한 자에게 침묵하지 않는다고. 그 역시 타고난 재능, 뛰어난 언변과 열정으로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어 갔다. 어렸을 적 담장 밖으로 새 나가던 그의 능력이 급기야는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 많은 이들의 의식세계를 뒤흔들 정도까지 된 것이다. 나 역시 그가 펴낸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전자는 이성구 대구시 의사회장, 후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어제 전혀 예기치 않게 그들 둘 모두 매체를 통해 보았다.


지금 대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도시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망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와중이다. 환자가 생겨도 치료받을 수 있는 병상이 모자라고, 의료 인력이 부족해 모두 피로감을 넘어 절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실성한 사람처럼 돌아다니고 있고 거리는 마치 폐허가 되어버린 듯하다. 도시 기능 자체가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성구 회장은 이 절체절명의 의료 재난 사태를 맞아 전국의 의료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썼다. 그는 공포와 불안에 떨며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대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 달라고 호소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말하며 자신들을 믿고 의지하는 시민들을 위해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자고 외쳤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와 칭찬도 바라지 말고 오직 피와 땀과 눈물로써 시민들을 구하자고 했다. 자신 역시 불안하고 겁나지만 제일 위험하고 가장 힘든 일은 자기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열악한 의료 현장의 최일선에 서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자고 외치는 그를 생각하면 나는 먹먹해진다. 결국 그의 호소문을 접한 경향 각지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속속 대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주저 없이 나선 그들 모두는 걸어 다니는 천사들이자 이 시대의 영웅들이다.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같은 날 나는 우연히 다른 방송을 접했다. 단 한 번도 '알릴레오'라고 알려진 그의 개인 방송에 귀를 열어본 적 없었으니 정말 우연이었다. 그는 현재 대구시장이 이 사태를 종식시킬 의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오히려 문재인 폐렴으로 키워 그 책임을 중앙정부로 떠넘기려는 정치적 계산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을 못 믿어 총리가 대구로 내려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정치 진영을 떠나 이 처절한 상황을 맞아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역의 행정 수장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속한 정치 진영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평상시에는 무당파고 선거철에는 부동층인 셈이니 내가 속한 정치 진영은 없다. 그의 정치 진영과 정치 논리에 대해 다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두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와 별개로 나는 한 번도 그의 인격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누구나가 다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공인이자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지적 능력에다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거기에다 화려한 언변과 뛰어난 순발력으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남다른 역량에 비해 그의 언행은 아쉽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구시장은 사상 초유의 재난을 이용해 정파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패륜 정치인이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파당의 손익을 따진다 해도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일을 두고 의도적으로 이 사태를 종식시키지 않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지나치다. 상식에 반하는 그의 말이 오히려 더 정치적이고 당파적으로 들다. 물론 이번 대처에 미흡한 점은 있을 수 있다. 또한 시장으로서의 그의 역량이 시민들의 기대치에 못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들의 생명과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가 앞장서 말하지 않아도 대구시장에 대한 평가는 다음 선거를 통해 냉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여우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렸을 적 꿈을 키우며 공부했던 고향마을에 덮친 사상초유의 재난이 아닌가. 그가 마스크 몇 장 구하기 위해 긴 줄 서 있는 시민들에게 몰래 선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그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바라는 참 지식인이자 큰 정치인에게 바라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이 사회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빼재와도 같은 존재다.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빼어난 인재들인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빛났던 뛰어난 필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 달라는 격문을 썼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남들이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뛰어난 문장과 언변으로 자신의 정치 진영을 수호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호불호가 엄연히 존재하니 어떤 효용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똑같은 재주라도 쓰임새는 다른 것 같다.


<빼재의 유래에 대해 다른 설도 있는 것 같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이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여서 숱한 병사들의 뼈가 묻힌 고개라는 뜻의 ‘뼈재’에서 ‘뼈’의 경상도 방언인 ‘빼’로 발음되어 ‘빼재’로 불리어졌다는 설이다. 표지석에 새겨진 ‘수령(秀嶺)’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유래다.>

작가의 이전글 <소나기>와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