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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Feb 24. 2022

헛소리, 헛짓, 헛것

헤어질 때는 말 없이

  내가 사는 곳에서 도보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있다. 그 연못에는 한 무리의 오리떼가 살고 있고 계절마다 놀랍게 변신하는 연蓮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못둑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늘 여러 빛깔의 접시꽃과 코스모스가 피어 있어 보기에 평화롭고 예쁘다. 비 오거나 눈발 흩날리는 날에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식어버린 감성을 데울 수 있는 오붓한 카페까지 있다.


  이 연못의 이름은 ‘나불지’다. ‘나불’의 뜻이 궁금해 사전을 펼쳐보니 ‘노을’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조망되는 저녁 무렵의 붉은 노을이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 같다. 지금은 솟아오른 건물에 막혀 감도가 덜하지만 그 자리가 너른 들판이었던 시절의 낙조落照는 장관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연못 옆으로 내려앉은 산줄기 따라 조금만 고도를 높여 해질녘 하늘을 바라보면 그 ‘나불’의 순도를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이곳에 정착한지는 대략 3년쯤 되었다. IMF로 직장을 잃고 중국으로 건너간 이후부터 들개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마침내 이 근처의 임대주택에 입주한 것이다. 그동안 늘 나를 괴롭히던 주거 불안 문제가 해소된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이렇게 좋은 환경까지 누릴 수 있어서 속으로는 ‘늦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아 산책하거나 가벼운 등산을 한다. 이 일상은 고단했던 내 삶에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평화로운 내 일상에 작은 생채기가 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는 과거 직장 동료였다. 나보다 몇 살 연장자였으니 선배라고 할 수도 있고 같은 지점에 근무할 때는 내가 결재를 받았으니 상관이기도 했다. 아직 70까지는 되지 않아도 대략 60 중반은 넘었을 그는 나이보다 젊어보였다. 사실 나는 얼마 전 이 근처에서 영어로 통화하고 있는 그를 봤다. 그제서야 그가 영어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기억났다. 그러나 굳이 아는 체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그 역시 나를 곁눈으로 알아봤던 모양이다. 그도 애써 나를 아는 체하지 않은 것이다. 나도 그도, 굳이 통화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반갑게 악수를 나눌 만큼 돈독한 사이도 아닌데 괜히 어색한 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서로 산책을 하다가 정면에서 마주친 그날은 지난번처럼 모른 체 하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같은 지점에서 근무할 때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거의 30여 년 만에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그 역시 이 근처의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IMF 사태로 직장이 무너진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십수 년을 살았다며 지난 세월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국땅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십 년 동안 해외생활을 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당구 칠 줄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조금 친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가봐야 할 시간이어서 다가오는 금요일쯤 전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서 같이 당구 한 게임하자며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미안했다. 그와는 달리 나는 계속 만남을 이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체면치레 때문에 이어진 어설픈 인연은 마치 읽지도 않을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게, 그래서 가급적 애매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말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좋게 말하면 실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약은 것이다. 더 좋게 말하면 여물어 가는 것이고 더 나쁘게 말하면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 내게 다시 만날 것을 제안했다고 여겼다. 그의 살가움을 내가 읽었듯이 내 무심함을 그도 읽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미안했다. 나이로 보나 과거 직책으로 보나 왠지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 못한 것 같은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 주 금요일 오후에는 도서실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나는 일찌감치 불참을 통보하고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그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할 말이 마땅찮아 포기했다. 그에게 갑자기 무슨 큰일이 생겼는가 싶기도 해 다시 휴대폰을 들었지만 왠지 오지랖 넓은 짓인 것 같아 또 포기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전화통에 눈알이 꽂혀 있었지만 끝내 그의 연락은 없었다. 내가 당구 치고 싶어 죽은 몽달귀신 붙은 것도 아니고, 연애질하는 것도 아닌데 억울했다.


  며칠이 지나 나불지에서 그와 다시 마주쳤다. 그날은 내가 카페 바깥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가 내 앞을 지나가다 마주친 것이다. 그는 계면쩍은 듯 말을 더듬었다. 나는 혼자 마시는 게 어색해서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해 그에게 내밀었다. 그때 연락 못해 미안하다며 그럴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 주 중에는 꼭 연락하겠으니 그때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날도 커피 잘 마셨다며 바쁘게 일어섰다. 그는 그 다음 주에도 내게 연락이 없었다.


  얼마가 더 지나 같은 장소에서 또 그를 만났다. 이번에는 나에게 늘 호의를 베푸는 또 다른 과거 직장 선배에게 내가 차 한 잔을 대접하려고 일부러 카페에 들렀을 때였다. 그날도 그는 나불지를 산책하다가 우리와 마주쳤다. 그는 옛 동료인 선배를 보고 무척 반가운 듯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둘만 커피 잔을 들고 있을 수 없으니 나는 그에게 또 커피 한 잔을 사줬다. 그는 헤어지며 이번 달 중으로 연락할 테니 그때 세 명이서 식사 한 번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현찰로 커피 두 잔을 샀는데 그는 외상으로 당구 한 게임과 식사 두 끼를 샀다. 이제 그의 말은 ‘말’이 아니라 ‘설레발’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배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이번 달’은 벌써 지났고 연말이 다 되었을 때쯤이었다. 이번에는 초례산 등산길에서 그와 마주쳤다. 나불지 옆으로 이어진 등산로였다. 나는 올라가는 중이었고 그는 내려오는 길이었다. 걸음걸이와 대략의 모습을 봐도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그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맞은편에서 올라오고 있는 나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는 체하지 않았으면 한눈파는 척하며 그냥 지나칠 태세였다. 내가 인사하자 그는 깜짝 놀라는 척하며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못 알아봤다고 변명했다. 마스크는 그도 끼고 있었다. 또한 나이는 더 많았지만 눈깔 상태는 오히려 나보다 더 좋아보였다. 그는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연락하겠다고 했다. 내가 오히려 민망했다. 그러고도 또 한 번 더 마주쳤지만 그때는 서로 모른 체하며 지나쳤다. 물론 해가 바뀔 때까지 그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산책길 나서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와 내가 마주치는 시간은 매번 일정했다. 점심 식사 시간 후였다. 사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속탈이 나서 애를 먹고 있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다만 나를 진료했던 의사들이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특히 식사 후에는 걷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겨울햇살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점심 식사 후 곧바로 나불지로 향한 것이다. 그도 점심 식사를 하고 이 연못 주위를 산책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와 마주치기 싫어 점심시간을 피해 몇 차례 다녔는데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마주칠 때마다 헛소리하는 사람 때문에 건강을 위한 내 일상까지 파괴되는 것 같아서였다.


  다음날 나는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나불지로 향했다. 어김없이 그와 마주쳤다. 서로 모른 체하며 지나갔지만 나는 곁눈질하는 그의 눈동자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가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는 고심 끝에 내린 나의 자구책이었다. 덕분에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그의 곁을 지나갈 수 있었지만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헛짓’을 하고 있었다. 원인은 ‘헛소리’ 때문이고 그 결과는 서로에게 ‘헛것’이 되고 만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왜 그렇게 빈말하고 사느냐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함부로 감정 표출할 나이도 지났다.


  곰곰이 자신을 뒤돌아보니 내가 그를 탓할 자격도 없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내가 모셨던 L이사님에게 나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퇴직 후 회사에 찾아오신 그분에게 ‘그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두 번씩이나 헛소리를 한 적 있다. 두 번째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L이사님은 내게 ‘왜 마음에도 없는 말 하느냐.’고 대놓고 역정을 낸 것이다. 무안함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그분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분 말씀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게 맞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직도 민망하고 면구스럽다. 이렇듯 마음에 없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조롱의 대상이 되게 하고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준다. 아니 상대방까지도 조롱하는 것이다. 이제 나잇살도 제법 먹었으니 입조심 하고 살아야겠다.


  더 이상 나불지에서 그와 내가 마주치지는 않는다. 내가 산책하는 시간을 오후 늦게나 저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를 꼈다 해도 매번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은 배짱이 필요한 짓인데, 그렇게 헛소리하고도 맨 얼굴로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활보하는 그의 배짱을 내가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이 또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그는 또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할 지 모르겠다.


  "죽기 전에 꼭 식사 한 번 같이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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