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속의 고목나무 Jan 09. 2024

어떤 인연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목도했다

세밑이 되면 다가올 새해의 다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작년 이맘때쯤, 내년에는 꾸준하게 운동을 해서 건강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각오를 비교적 잘 지켰던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매번 똑같은 짓을 하지만 젊었을 적에는 번번히 작심삼일에 그쳤던 반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취율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다. 아마도 그때는 세상의 눈을 의식해 무턱대고 역량을 넘어서는 과욕을 부렸다면, 이제는 분수를 깨닫고 정말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과연 해낼 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한 후에 결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있으니 이제 '운동'은 빼놓을 수 없는 새해 결심의 필수 항목이 되었다. 올해는 거기에다 추가하고 싶은 게 더 있다. 바로 '정숙 운전'과 '성숙한 마음 쌓기'이다. 아내는 이런 내 생각을 듣더니 "정숙이와 성숙이를 데리고 올해도 한번 잘 살아봅시다!"라고 농을 친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를 보고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K를 보고 있노라면 소설 <파친코> 속 주인공인 선자의 아버지, 훈이가 떠오른다. 윗입술이 세로로 갈라지고 한쪽 발이 뒤틀린 채로 태어난 훈이는,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과묵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느릿한 말투 때문에 조금 모자란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그는 셈이 밝은 데다 이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반듯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훈이는 생명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본주의자였다. 소설 속에서 그가 산 세월은 짧았지만 이야기의 뼈대를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바탕이 된 인물이었다. 또한 K는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거나 함부로 비판 대열에 가세하지 않는, <위대한 개츠비>의 젊은 시절 모습과도 닮은 듯했다. K는 소설 속 훈이처럼 입술이 갈라진 언청이는 아니다. 그러나 훈이처럼 다리는 절뚝거렸고 말투 또한 느렸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다리가 불편한 것은 군 시절에 무릎 관절을 크게 다쳤기 때문이고, 말이 좀 어눌한 것은 10여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국가유공자이자 4급의 장애인이다. 또한 오랜 시간 불편한 몸으로 어린 두 남매를 혼자 키운 한부모가정의 가장이었다가, 이제는 그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후 혼자 지내고 있는 독신남이기도 하다. 아이들 둘을 키우기 위해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조용히 그를 쳐다봤다.


K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9월, 공공근로 현장에서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꼬박 3개월을 같이 일했다. 우리 임무는 습지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시박넝쿨과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몸이 불편한 그에게도, 난생 처음 예초기를 잡아본 나에게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날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지 않아 크게 다칠 뻔한 사고가 난 직후여서 일하는 게 힘들게 느껴지던 때였다.


"서형!...... 저만 벗겨 주면 나무가 숨도 좀 쉬고 햇볕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뒤따라오던 그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던진 말이었다. 그의 눈길은 온통 넝쿨로 뒤덮여 고사되기 일보 직전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나무는 자신의 다리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사진 비탈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내 도움을 받아서라도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 나무를 보기는 했다. 그러나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굳이 땀흘리고 싶지 않아 못 본 척그냥 지나친 터였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도 죽어가는 나무를 살릴 생각으로 일하는데, 몸 멀쩡한 인간이 나무를 휘감은 넝쿨을 빤히 보고서도 그저 귀찮은 일거리로만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매달 적지 않은 국가유공자연금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다 조기수령한 국민연금과, 아들딸이 월급날이면 꼬박꼬박 부쳐주는 용돈까지 합치면 굳이 이런 궃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는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어떤 병이라도 지정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유공자 신분이니 돈이 아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십수년 동안 공공근로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K는 소설 속의 훈이보다 훨씬 더 성실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심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은 비단 나무뿐만 아니었다. 우리가 일한 컨테이너 사무실 옆에는 호피 무늬의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그 개를 봤을 때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정상적인 개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홀로 웅크리고 있는 짐승처럼 보였다.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의 눈길을 피하며 숨기에 급급했다. 자세히 보니 밧줄로 묶어 놓은 말뚝을 기점으로 반경 2미터도 되지 않는 공간이 녀석이 가볼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게다가 녀석이 갇혀 있는 우리의 환경은 조악하고 열악했다. 주인은 그저 빈 밥그릇에 사료만 한가득 부어주고 돌아서면 끝이었다. 버려지지는 않았지만 묶여있었다. 내 눈에는 오히려 버려진 개보다도 더 못한 삶처럼 보였다. 그런 녀석에게 K가 무심하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K는 녀석을 '멍'이라고 불렀다. 멍멍이의 줄임말인 듯했다. 출근하자마자 K가 녀석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늘 '멍아, 잘 잤나?'였다. 그 말을 하는 K의 표정은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언제부턴가 출근하는 그의 손에는 오뎅이며 고기며 햄 같은, 녀석이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들려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K는 녀석에게 억지로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온화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정답게 말을 건네며, 녀석이 좋아하는 것을 넌지시 주기만 할 뿐이었다. 또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려는 듯 틈만 나면 뒷짐을 지고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퇴근할 때는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어주고 매일 아침 인사를 빠트리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 감탄했다. 그러는 사이에 녀석도 조금씩 변해갔다.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희멀겋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우리에게도 조금씩 다가왔다. 급기야는 출근 시간이 되면 으레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우리를 보면 버둥거리는 몸짓을 했다. 반갑다는, 혹은 기다렸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앞발을 내밀었다. 어느덧 녀석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깊은 어둠은 사라지고 만면이 밝아졌다. 시들어가던 한 생명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는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K와 '멍'이를 통해서 똑똑히 목도했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고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이 되자 우리는 일을 끝내고 헤어져야 했다. 나는 잠시나마 행복했던 녀석의 운명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K는 틈이 날 때마다 '멍'이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이놈이 많이 반가워 하네요."


한참 지나 근황을 묻기 위해 전화를 했던 그날도 K는 '멍'이에게 가 있었다. 그 후로도 먹을거리가 생기면 챙겨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멍'이에게 달려가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얼마 후 우리 부부는 K로부터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같이 일하는 3개월여 동안 혼자 살고 있어 점심 준비가 어려운 K를 위해 도시락을 싼 아내에게 고맙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도 K는 감이 익는 계절에는 홍시 상자를, 그 후에는 사과 상자를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딸의 결혼식 날 우리 부부에게 부조계를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럴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오히려 K의 믿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에 응했다. 날씨가 한껏 추워진 어느 날, K는 또다시 고맙다며 아내에게 두툼한 겨울 외투 한 벌을 선물했다. 그제서야 K가, "서형! 부인의 몸매 종류가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어서 속으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났다. K는 아내의 체형을 묻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선물 받은 외투는 아내의 몸에 딱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K는 늘 진심을 다해 먼저 마음을 베푼 다음 그 대상이 '멍'이든 사람이든 오롯이 믿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마치 성직자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결혼식장에서 딸과 함께 입장하는 K와, 그날 부조계에 자리한 우리 부부의 모습
K가 아내에게 선물한 외투

언젠가 불편한 몸으로 한참 동안이나 걸어서 왔다는 그에게 어차피 무료로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사서 고생했느냐고 물으니, "국가유공자라고 이래저래 혜택을 많이 받는데 조금이라도 나랏돈 아껴야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순간 가슴속에서 뜨끔한 뭔가가 솟구쳐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토록 성숙한 마음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문득 그가 운전하던 차 안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몇 십년 동안 운전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속도 위반을 해본 적 없습니다." 그 순간 나도 새해부터는 성숙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숙하게 운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한 올해는 저렇게 멋진 내면을 가진 사람에게 반듯한 마음을 가진 배필이 꼭 생기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먹고살 만한 형편인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충분히 훌륭한 가장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덕 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