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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17. 2024

조용한 절연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한 번에 아프게 할 수 있는 감정이 있을까? 여러 감정들이 있겠지만 이별의 아픔, 배신감 같은 것들이 꼽힐 것이다. 사람으로 마음이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그런 감정들에 무뎌질 만한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런 일들에 초연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며 사는 것은 늘 어렵기만 하다.


마음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의도적으로 속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되어 그들에게 화를 내지도 하나의 서운함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늘 인간관계에 온 마음을 쏟는 내가 또 지나치게 예민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들 중 한 명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왔다. 사과를 해온 것으로 내가 예민하지 않았다는 점, 그들이 나를 속이려 했다는 의도성이 확실해져 더 마음만 아팠다. 그들은 내가 항상 0순위로 아꼈던 사람들이였 던지라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마음 아픈 그 일을  내가 아는 긍정의 말들로 예쁘게 포장했다. 그렇게라도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싶었다. 내 감정으로 그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그르치고 싶지 않았다.


괜찮고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던 생각은 가차 없이 어그러졌다. 그 일 뒤로 시간을 내어 따로 만났지만 딱 짜인 틀에서 나만 삐딱하게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유쾌해 보였고, 나를 서운케했던 그 일을 그들은 스스럼없이 내 앞에서 꺼냈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처럼 아무렇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며 마음이 허전했다. 역시 이번에도 난 사람 좋은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최소한 내게 왜 그런 행동을 했었야 했는지 그들의 그 유쾌한 말로 가볍게 듣고 싶었다.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관계를 이어 오다가 결국 마음을 접는 일이 다시 한번 생겨버렸다.


나를 위해서 선물을 샀다고 했다. 며칠 뒤 직접 건네받은 선물을 내려다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택배 배달 온 상태 그대로 주문자의 송장도 뜯지 않고 포장 비닐 채 나에게 준 것이다. 비닐 겉면에 붙은 송장에는 정말 많은 정보들이 들어 있었다. 거의 두 달 전에 주문된 물건이었다. 나를 위해서 그들이 같이 산 선물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본인을 위해서 샀던 선물을 택배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나에게 하나를 준 것으로 보였다. 그 일 뒤로 모든 게 분명해졌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과, 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과 조용하게 절연할 결심을 했다. 내가 가진 이해심을 과장하며 늘 좋은 사람인 척 애쓰면서 옆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한 시절 그래도 내가 마음을 둘 수 있었던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알게 되었던 것은 운이 좋았었다고 생각한다. 그 우연했던 만남을 내가 조용한 절연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내 곁에는 이제 내 감정과 결을 결을 같이 해주는 사람들로 채우려고 한다. 오랜 인연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을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 읽은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조용히 마음이 다쳤고,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인연은 아닌 것으로 정리했다. 호기롭게 조용한 절연이라고 글을 쓰면서도 어쩐지 가슴이 아픈 것은 그런 조용한 절연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토리 감독, 도토리 연으로 끝나는 1회용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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