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진화 중

12살 지구인 이야기(21)

by 도토리

원격수업으로 집에 혼자 있는 아이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내가 차려두고 간 점심을 먹고,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혼자 생활한다. 그동안 퇴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내가 하는 일은 아이에게 차려주고 간 밥을 아이가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스스로 적당량의 밥을 잘 먹었는지가 늘 염려되기 떼문이었다.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를 챙기는 것이 내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퇴근해보니 식탁 위에 차려둔 음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방으로 가져가서 먹었나 싶어서 방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점심은 먹었어?"

"응. 맛있게 잘 먹었어."

"근데 왜 빈 그릇이 없어?"

"엄마 내가 한번 설거지해봤어."

"설거지?" 말을 듣고 부엌으로 가보니 설거지를 해서 아이가 건조대에 둔 게 눈에 띄었다.

"우와. 너 다 컸다. 스스로 먹고 설거지까지?" 아이는 한 번도 이제까지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놀랬다.

"어때! 나 꽤 쓸만하지?" 아이는 또 작은 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날 보며 웃는다.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 응 세제를 수세미에 묻혀서 거품 내고 잘 헹구면 되잖아."

"잘했어. 고마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순간이 몇 차례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더디게 크는 것 같던 아이가 오늘은 더욱 훌쩍 커버린 모습이다. 아이가 간식으로 며칠 전 사둔 새우깡을 꺼내 주고는 책 읽을 때 먹으라고 말하고 운동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 싱크대 위에 아이가 먹다가 남은 새우깡을 비닐팩에 담아놓고 단단히 묶어둔 게 아닌가. 제법 야무지게 묶어놓은 비닐봉지가 귀엽다. 부엌이라는 곳은 엄마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아이가 어느새 슬금슬금 이 공간으로 들어오는 게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정하기 그지없던 아이가 갑자기 낯선 아이가 된 느낌을 시간이 갈수록 자주 받는 요즘이다. 사춘기는 유아에서 어린이를 넘어 청소년으로 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동안 가져보지 못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생기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는 것. 그것이 그 시절을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의 변하는 모습을 만나면서 사실 지난 어린 시절 다정다감하고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많이도 그리워했었다. 매일이 귀여웠던 아이와의 이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 조용히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의 예측할 수 없는 진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거라는 설렘이 든다.

이전 09화엄마한테 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