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림 잘 그린다.

12살 지구인 이야기(24)

by 도토리

"엄마, 그거 알아? 카카오톡에서 자기한테 톡을 보낼 수 있대!"

"응, 엄마는 엄마가 기억해야 할 것들 가끔 보내."

"아. 엄마는 알고 있었구나. 나도 한번 보내봐야지."

"뭘 보낼 건데?"

"비밀! 내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야."

순간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궁금해서 아이가 자기에게 보내는 톡을 곁눈질로 봤다.


너 그림 잘 그린다.


아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 너 그림 잘 그린다.'라는 말이었구나. '-하고 싶다.'라 말에는 결핍의 욕구가 있다고 한다. 아직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기에 채우고 싶은 그 무엇. 아이는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은 것일 수도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인정을 필요로 하는 것 일수도 있다. 아이가 그리는 그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표현해 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뒤에서 말을 건넸다.

"엄마, 이게 내 스케치북인데 그림 실력이 달라. 1학기 때 것부터 볼래 아니면 2학기 때 것부터 볼래?"

"이따가 볼게."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던 중이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치." 아이는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에게 보여달라고 했더니 아이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면서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아직 아이가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한 그림들을 보지 못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인플루엔셜, 2021)를 읽으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순간을 되돌리고 싶으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주인공 로라처럼 후회되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돌아간다면 내 삶은 더 나은 삶이 되었을까?

아이와의 행복은 큰 어떤 일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체스판의 작은 폰이라는 기물이 묵묵히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다 업 포지션(up-position)이 되어 여왕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차근차근 하나씩 소소한 행복들을 채워나가면 그 행복들이 모여 아이와 혹은 부모와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도 연습을 해야 된다고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느끼는 연습. 만일 내가 그날 고무장갑을 벗고 바로 뒤돌아 아이의 그림을 찬찬히 내려다보아 주며 "너 그림 잘 그린다"라고 말해주었다면 아이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춘기 아이는 기다려주다가 마음을 닫아버린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탄성을 내지르던 그 마음과 눈으로 아이를 다시금 봐줘야겠다.


오늘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 옆에 다가가서 무심한 듯 툭 한마디 던지고 와야겠다.

"너 그림 잘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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