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Jul 31. 2022

[서평] 부지런한 사랑

#2022-6

부지런한 사랑. 사랑이야기가 듬뿍 담겼을 것 같은 소설책 제목이지만 글쓰기 교사로서의 경험을 풀어낸 에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글쓰기 교사의 감정과 일상에 더해 글쓰기에 대한, 세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다 보면 금세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는 그런 책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항상 가르침 건너편의 배움을 전제로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이들, 청소년들, 어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당신이었음을 고백한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도 매 시간 수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말을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오히려 발표를 시켜주지 않아서 우는 아이도 있지만 고학년 때는 알면서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음에도 입을 다문다. 그런 소극적 참여자들을 위해 작가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먼저 꺼낸다고 한다. 솔직한 사람 앞에서, 더욱이 솔직한 어른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이 책에 대해서 작가가 아이들 글에 너무 심취했다고 별점 테러를 했지만 나는 아이들의 글이 작가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솔직한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열쇠처럼 느껴져 참 좋았다.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실었다는 글들을 보다가 '뇌가 말랑하다는 느낌은 이런 것이겠구나' 했다. 아무리 오감으로 세상을 탐험하려고 애써도 시각에만 의존하는 나 같은 딱딱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아이들은 볼 수 있구나 느끼니 책 속의 아이들에게 귀여운 질투심이 일었다.


글쓰기 교사로서 작가는 '글투'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의 글인지 밝히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낼 수 있는 단서가 되는 그 무엇! 작가는 그들의 글투를 발견하고 수호하고 추가하는 것이 글쓰기 교사의 의무 중 하나라고 한다. 글쓰기 교사의 의무가 그것이라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나의 의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진정한 슬픔과 분노는 우리의 존재를 뒤흔든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이야말로 그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슬픔이나 분노를 경험한 사람의 오늘은 과거의 나와 같지 않을 것이며 미래의 나와도 같지 않다. 고난과 시련이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해 귀를 막게 되는 말이다. '그래도 고난과 시련이 없이 평탄한 사람을 살 수 있는 게 더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시니컬한 말이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제어되지 못하고 튀어나오곤 한다. 경험을 해보지 않으니 그런 소리를 쉽게 하는 거라고.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안다. 삶이 크게 흔들려봐야 자신을 돌아보고 생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그 일도 겪었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는 배짱도 생기고 적극적으로 삶에 에너지를 쏟아 그 흔들림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하게 되고,  흔들림 부여잡아 줄 옆에 정말 소중한 사람 하나 두고 싶은 욕심도 생기게 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진심으로 마음을 쏟게 된다.


작가는 글쓰기의 꾸준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라며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단다.  '재능을 운명으로 연결해가길'이라는 글쓰기 스승의 말을 마음속에 두고 살아왔다는 작가의 말이라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나는 어떤 말을 마음에 담고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을까. 프롤로그에  작가는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믿는다.'라고 했다. '부지런하다'라는 단어가 부지런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추를 넣은 무게감이 아닌 희망감으로 들릴 수도 있음을 처음 알았다. 부지런히 쓸 체력,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참 멋진 말이 틀림없다. 멋진 나를 만들 마법의 단어 둘이다.

오늘처럼 글을 쓰고 나면 가끔씩 내가 좋아진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미래의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부지런히 나를 사랑할 에너지를 충전해준 작가가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H마트에서 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