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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01. 2022

날씨가 눈치 없게

13살 지구인 이야기(38)


며칠 전부터 내가 있는 제주는 비가 계속 내린다. 이제는 그만 오나 싶다가도 금세 다시 비가 내린다. 며칠 전 마음에 쏙 드는 농구공을 깜짝 선물 받은 아이는 비 오는 이 날씨가 무척 속상한 모양이었다.

비가 오나 안 오나 창문 밖으로 확인하기를 여러 번. 확인할 때마다 비가 왔다.

"칫! 날씨가 눈치 없게!"

얼른 나가서 새 농구공을 가지고 농구를 해야 되는데 눈치 없는 날씨 덕에 나가지도 못하는 아이의 머리 위로도 하루 종일 먹구름이 둥둥 떠있다.


어제는 밤에 조명을 낮추고 조용히 아이와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드득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비 때문에 소리가 요란하다. 이게 무슨 소리냐며 아이가 묻길래 비가 오는 소리라고 했더니 아니라는 눈빛으로 작은 눈이 나를 보며 커진다.  왜 그러나 싶어 생각해보니 베란다 창으로 난 가스보일러 배기통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로 여느 때 비 오는 소리보다 훨씬 크고 쇳소리가 났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다 보니 배기통 위로 떨어지며 소리가 울림이 있었다.

둘 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라도 들은 듯 조용히 그 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 순간.

"팝콘 튀겨지는 소리 같지 않아?"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팝콘?"

"응, 그 팝콘 알갱이 터질 때 탁탁하는 소리 말이야."

"듣고 보니 그렇네."


잠시 뒤 비가 더 세져서 제법 요란하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열대우림 기후처럼 후드득 떨어지더니 가스 배기통을 내리치는 빗소리는 한층 더 크게 들렸다.

가만히 책에 코를 박고 있던 아이가 고개도 들지 않고 한마디 한다.

"아... 팝콘이 너무 잘 튀겨지네" 아이의 말 한마디에 비 오는 밤. 조용한 우리 집은 빗소리보다 웃음소리가 더 크다. 내일은 날씨가 팝콘 그만 튀기고 맑은 햇살 내리쬐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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