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Aug 13. 2022

방문이 닫혔다

13살 지구인 이야기(39)

아이 방과 나의 방은 항상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언제고 그저 편하게 왔다 갔다 한다. 가끔 그림을 그리다가 잘되지 않을 때 들리는 아이의 탄식, 내가 청소하다가 부딪혀 아! 외마디 소리가 나오면 괜찮냐며 방에서 들려오는 관심의 소리, 아이가 즐겨 듣는 음악 소리를 엿듣는 재미가 있곤 하다. 그런데 어제 저녁 갑자기 아이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소리가 어색해서 거실에 나와보니 아이 방문 앞에 노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방문은 굳게 닫혀 있다.

서울여행을 갔을 때 이것을 왜 사나 했더니 이렇게 쓰려고 산거였다니! 아이의 아이디어가 귀엽다.

"왜 방문을 닫아?"

"그냥."

흔히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진짜 사춘기라던데 아이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닫힌 아이의 방문이 참 어색하고 낯설다.


아이가 어디 간 것도 아닌데 어디 간 것 같고, 대화가 차단된 그런 느낌. 문이 하나 닫혔을 뿐인데 거대한 벽이 하나 세워진 심리적 거리감은 피카의 백만 볼트 전기 공격을 받은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아이방에서 들리는 사부작 거리는 소리들에 거실에 있는 나의 귀는 쫑긋해지고 마흔이 훌쩍 넘은 상상력은 날개를 펼친다. 혹시 좋아하는 여자 아이와 톡을 하나? 나 몰래 게임을 하려고 하나? 아이의 사생활에 이 선을 넘는 엄마의 관심이란 영원한 짝사랑임이 틀림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이것 봐!" 하면서 내게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인터넷 검색해서 따라 그려보았노라며 보여준다.

'그림을 그린 거였구나.'

아이는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아이다. 그리는데 누가 보는 것도 싫어하고 다 완성된 후에야 내게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아마 그래서 문을 닫았나 보다.


아이의 방문이 앞으로 얼마나 자주 닫힐지는 모르고 내 마음은 또 얼마나 허전해질지 모른다. 한 단계 한 단계 건강한 어른으로 가기 위한 단계들을 하나씩 오르고 있는 아이를 보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그저 조금은 내딛는 걸음이 맘 편하기를 '왜'라는 질문은 빼고 조용히 봐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날씨가 눈치 없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