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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14. 2022

삶의 단맛

13살 지구인 이야기(40)

아이와 요새 밤에 산책을 다니고 있다. 정확히는 아이가 겁쟁이인 나와 산책을 다녀 주고 있다.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같이 가자고 아이를 달래서 나온 어느 날, 밤공기가 좋아 "나온 김에 좀 걸을래?" 말을 꺼낸 게 시작이었다. 집에서 10분 거리면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길이 예쁘게 나 있어서 아이와 걷기가 참 좋다. 여름밤 한치라고 불리는 창 오징어 잡이 배가 바다에 동동 떠있는 풍경은 언제 봐도 아름다운 제주의 여름바다 풍경이다. 별이 내리는 바다랄까.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걷고 아이는 씽씽이를 타고 나를 졸졸 따라오곤 했었는데  이젠 아이는 저만치 달려가고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속도로 보폭을 넓혀 걸어 아이를 따라잡는다.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잡아 보지만 거리가 멀어지고 밤이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얼마쯤 걷다 보면 풍경 좋은 언덕배기 위에서 아이가 나를 내려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엄마 지쳐?"

"죽을 것 같아." 얼마나 걸었다고 땀이 흐르고 숨소리가 고장 난 압력밥솥 마냥 컥컥거린다.

"요즘 왜 이렇게 체력이 약해?" 핀잔을 주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이제는 엄마인 나보다 자기가 더 단단해진 체력을 가지게 된 자부심마저 보인다.

"더워서 그런 거야!" 멍한 눈을 흘기며 아이의 눈웃음을 좇는다.

연일 나와 손의 크기를 맞춰보려고 하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울에 비치는 키를 유심히 보며 자기가 엄마보다 이제는 큰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렇게 으스대며 내 눈에 눈높이를 맞출 때면 "2학기에는 엄마가 너를 올려다보겠구나!" 하면서 앓는 척을 한다. 오랜만에 밤에 함께 산책을 다녀보니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것을 알겠다.


아이는 한참을 앞서 걷다가 내게 힘든지 더 걸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더 걸을 수 있겠어?"

'이거 역할이 바뀌었다!' 늘 예전에는 내가 아이가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걷고는 했는데 말이다.

이래 봬도 내가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온 몸인데 나를 무시하는 거냐고 괜한 오기가 생겨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큰소리를 친다.

"더 걸을 수 있지! 저기 해수욕장까지 가볼래?"

그렇게 밤 산책은 밤 운동이 되고 말았다. 왕복 6km가 훌쩍 넘는 길을 아이와 뛰기도 하고 걷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걸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좋다. 아이도 오랜만에 밤 운동에 기분이 좋았는지 얼굴이 생글생글하다. 어디 저게 13살 사춘기 남자아이의 표정이란 말인가!


"엄마! 차들이 다 웃고 있어."

"무슨 말이야. 차가 어떻게 웃어!"

"저기 봐, 차 번호가 다 하, 하, 호, 허, 허"

아이가 가리키는 도로변 호텔 주자창을 보니 전부 렌터카 차들이었다.

"그렇네 정말 다 웃고 있네!"

차들도 아이말처럼 여행 와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나는 아이의 이런 유쾌함이 참 좋다. 아이의 이런 유쾌함과 존재는 내 삶이 단맛을 낼 수 있는 마법의 조미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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