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아이만 집에 두고 독서모임을 다녀왔다. 저녁에 아이만 두고 가는 일이 생기면 어디를 가든 사실 맘이 편치는 않다. 이 날따라 리더 선생님께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오셔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모임은 재미로 넘친다. 9시가 되어가는데 아이가 무얼 하는지 궁금도 하고 심심하진 않은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해서 모임에서도 자꾸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게 된다. 늘 아이는 내가 없는 시간에 자기만의 자유를 누리며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그림도 그린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런 마음이 텔레파시로 통했을까. 아이에게 톡이 먼저 왔다.
"엄마 뭐해?"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심심한데 엄마는 뭐 하고 있느냐 는 투덜거림의 의미와 엄마가 평소보다 늦는다는 생각이 드는 불안의 의미이다.
아이에게 마침 와인잔에 따라 마시고 있던 사과주스를 찍어 보냈다.
넌 뭐 하고 있냐고 했더니 할 거하는 중이라며 늦게 와도 된단다.
"즐기고 와." 아이의 톡을 확인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즐기라고 하니 갑자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톡을 보냈는지는 알 길이 없는 엄마지만 순간 나는 아이 걱정은 하지 않고 즐겨도 되는 엄마가 된 것이다.
육퇴(육아 퇴근)가 아닌 육졸(육아 졸업)을 한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인가!
내가 아이를 키울 때는 육퇴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하루 육아가 끝나면 조용히 맥주 한잔을 들이키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거나 들으면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 짠한 마음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아이가 어릴 때는 언제 아이가 걷는지, 말을 하는지, 아이가 커가면서 이뤄내야 하는 각 발달 단계에 맞춰 건강하게 커주길 늘 노심초사하면서 아이를 지켜봤던 것 같다. 흔히 아이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아이가 혼자서 바깥놀이나 외출을 할 수 있을 때면 엄마의 육아는 끝이 난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크면 큰대로 엄마의 역할은 늘 존재했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의 엄마의 역할은 뭔가 줄을 타는 역할이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져도 안된다. 무심한 듯 어딘가에 있다가 엄마!라고 불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 태연한 척 슬그머니 등장해야 한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잔소리 맘이 되어 버리고 너무 멀어져 버리면 아이의 거리는 한 뼘씩 멀어진다. 평생 사람과의 관계에서 밀당이라는 건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참 힘든 사랑의 조절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