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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16. 2022

엄마 뭐야!

13살 지구인 이야기(43)

아이와 방학을 맞아 환상의 나라에 다녀왔다. 에버랜드. 가기 전부터 비예보가 있어 걱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에버랜드를 가야 되는 우리로서는 일정을 늦출 수가 없다. 도착했지만 소나기가 내린 직후라서 대부분의 놀이시설은 운행을 잠시 멈췄다.

"에이. 이게 뭐야."

"그러게 비가 오니 탈 수 있는 게 많지 않네."

그렇게 실망하고 터벅터벅 걷는데 한여름인지라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르고 습한 기운으로 습식 사우나에 온 기분이다. 때마침 고개를 돌려보니 오른쪽에 오락실이 있다.

"저기 가보자." 아이의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무척 시원하다. 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농구 게임 앞으로 간다. 처음 해본 다고 설레며 공을 잡았지만 시원치 않은 스코어다. 

"어, 이게 왜 안 들어가지?" 가까이 있는데도 슛이 들어가지 않는 게 의아한 아이는 연신 아쉬워한다. 

"있어봐. 엄마가 한번 해볼게."

삑! 소리가 나고 공을 들어 골대에 던지기 시작했다. 감이 좋다. 가끔 들어갔다 나왔다를 하더니 연이어 골이 5개나 들어가기까지 한다. 이건 뭐 거의 링이 공을 먹는 느낌이다.

"엄마 뭐야!" 그 순간 아이가 외마디 탄성을 지른다.  

어릴 적 친구들과 오락실 가면 다른 게임은 못하고 농구게임을 같이 했던 걸 몸이 아직도 기억하는 모양이다. 힘을 빼고 살짝 해야 링안으로 공이 들어가지 힘을 주어 던지면 튕겨 나오기만 한다. 게다가 너무 세면 게임기 밖으로 공이 탈출하기도 한다. 

"헐! 엄마 42점이야!"

42점. 1분 안에 42점이 되려면 21개의 공을 성공시켜야 한다. 확률적으로 나쁘지 않다.

"봤지?" 

아이는 지쳐서 자기가 농구할 때 구경만 하는 엄마가 여기서 슛을 쏘아 성공시키는 모습에 어지간히 놀란 눈치다.

사실 나도 놀랬다. 이렇게까지 잘 들어갈 줄은.

"그나저나 어떻게 하는 거야?"

"왼손은 거들뿐! 살짝! 슛!" 아이에게 살짝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아이는 한 번 더 해본다며 농구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넣어보지만 나의 점수에는 역부족이다. 

그 뒤로 아이는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다가도 오락실이 보이면 참새가 방앗간을 들리듯이 농구를 한판 하겠다며 들어갔다가 나왔다.

"엄마 오락실 가면 시원하니 좋잖아. 한번 하고 가자."

그렇게 놀이기구 한 번, 농구 한 번을 번갈아 놀던 아이는 결국 나의 점수에 거의 근사한 점수로 따라붙었다. 

'녀석, 승부욕 하고는.' 

하루 종일 에버랜드에 있었지만 결국 아이는 나의 스코어를 넘지는 못했다. 

"아들, 더 연습해라!" 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나는 다음에 내가 가차 없이 밀릴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날이 쑥쑥 커가는 아이 앞에서 잠시나마 '라떼는 말이야.' 하며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순간이 있었음이 유쾌하고 좋다. 


2022 여름 아이와 나의 시절 놀이. 오락실 농구게임. 

언젠가 부모가 아이와 놀아준다는 표현은 잘못됐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부모는 아이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와 그냥 놀아야 된다고 한다. 사실 나 역시도 그게 잘 안되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앞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라는 것은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와 한판 놀이를 같이 즐기고 나면 나오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은 그 수고로움을 잊게 해 준다. 아마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 농구게임 앞에 서면 이날의 내 모습을 추억해주겠지?


"엄마 내려가면 나랑 놀이터에서 슛 대결 하자."

대답을 안 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늘 예스다. 아이는 내 평생 vip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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