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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17. 2022

엄마의 리즈 시절

"엄마는 언제가 리즈 시절이었어?"

갑자기 아이가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아직이야."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해버렸다.

"아직? 그럼 어떤 리즈 시절을 만들고 싶어?"

아... 이건 어렵다. 어떤 게 나의 리즈 시절이 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다. 가끔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꼭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아이는 이렇게 한다.      


'리즈'라는 말을 찾아보니 전성기, 황금기라는 뜻으로 나온다. 무엇을 기준으로 나의 전성기를 따져보아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지게 되었던 다양한 역할의 이름표를 따라 먼저 생각해본다. 교사로서의 리즈 시절. 엄마로서의 리즈 시절, 여자로서의 리즈 시절. 어느 하나를 콕 집기가 쉽지는 않다.

     

우선 교사로서의 리즈 시절을 가늠해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늘 복되다. 하지만 순간순간이 행복이지 어떤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는 일이 아니다 보니 만나고 헤어짐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모든 교사가 그러하듯 리즈를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논하기에는 어렵다. 그래도 교사로서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해서 대학 강의를 나가면서 부수입을 얻을 때였나? 아니면 어려운 일을 끝내고 표창을 받아가며 인정을 받을 때였나? 남들은 그렇게 볼지 몰라도 나에게 그런 건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애초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아닌 듯하다.


다음은 여자로서의 리즈 시절. 예전도 지금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잘 못해서 예쁘게 보이는 것에는 원래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꽤나 많은 사람들의 고백은 받아보았다. 그때 좀 제대로 잘 고를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고백한 사람의 수로 따지면 그때가 리즈인가? 사랑을 받은 거니.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일까 그냥 이것도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엄마로서의 리즈 시절을 생각해본다. 내가 보는 좋은 엄마로서의 나와 아이가 보는 좋은 엄마인 내가 같을까? 내가 가장 잘해준 시절과 아이가 가장 좋은 엄마로 느끼는 시절은 다를 것이다. 아직 엄마로서의 리즈시절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인다.


나의 리즈시절을 생각하니 이건 뭐 혼자서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자뻑의 시간이 되고야 만다. 비루하다 싶으면서도 너 조금 괜찮았던 사람이야 하고 설핏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위로가 된다.

이렇게 글로 적어봐도 잘은 모르겠다. 내게 리즈 시절이 있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내 리즈 시절은 있었다면 또 올 것만 같고 없었다면 꼭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차의 계절>이라는 책을 읽다가 차가 가장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차나무가 윤택한 환경에서 쑥쑥 자라는 것보다 적당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찻잎이 천천히 성장할수록 차의 맛과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고 한다. 차 나무에게는 불편한 환경이 차의 풍미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차가 그렇듯 자연의 일부인 나도 지난 십 년 동안 윤택하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고비를 넘기며 더 맛과 향기가 짙어진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 맛과 향기가 나에게 리즈 시절을 가져다 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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