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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18. 2022

식린이의 노트

나는 식물만 키웠다 하면 다 흙으로 돌려보내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다. 심지어 선인장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 앞으로 식물은 절대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내가 아이와 지역 오일장에 가서 직접 두 개의 식물을 샀다. 여태까지는 누가 선물해주거나 공짜로 얻게 되는 식물들을 키워봤다면 내가 직접 사본 최초의 식물들이다.


하나는 로즈메리였고, 다른 하나는 스파티필름이라는 식물이었다. 식물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기에 손이 덜 가고 작은 것들로 샀다. 화분이랄 것도 없고 그저 플라스틱 얇은 모종 화분에 담긴 두 식물을 각각 4000원에 주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식물을 살 때부터 아이는 엄마 그거 진짜 살 거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스파티필름의 줄기들 중 몇 개는 곧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곧 넘어질 사람처럼 어긋나 있었다. 꽃대가 있기는 했으나 작게 피곤 이미 다 질 때라 색깔이 누렇게 되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나도 알았고 그래서 이 스파티필름이 가격이 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인지 계속 이 식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식물을 키우지도 못하지만 꼭 내가 이 상태보다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고, 내가 안 사면 아무도 안 사서 버려질 것 만 같은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온 이 스파티필름.

집으로 와서 식물들을 집에 있던 두 개의 빈 토분에 옮겨 담아주었다. 무사히 이사를 마친 후 남쪽 창가에 올려두니 작은 두 개의 화분만으로도 운치 있는 카페로 변하는 느낌이다.


지난 5월에 그렇게 데리고 왔는데 이 식물이 꽤나 정직한 식물이었다. 3일쯤 물을 안 주면 잎이 축 쳐져 고개를 다 숙인다. 그때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고개를 든다. 그렇게 물을 주는 시기를 잘 맞추고 가끔 남쪽으로 난 창에서 바람과 햇볕을 맡게 해 주었더니 어찌나 쑥쑥 자라던지 볼 때마다 신기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만큼 돌려주는 이 식물을 보고 있자니 내가 관심을 주었다기보다는 이 식물이 먼저 내게 신호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큰 잎으로 온몸으로 나 물이 부족해요라고 표현할 수 있다니,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는 이 식물의 용기가 순간 부러워졌다. 내심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하고 실망하기보다는 이 스파티필름처럼 표현할 수 있다면 서로 사랑을 건강하게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 2주 전엔가 주말에 2박 3일 여행을 다녀오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와!" 가기 전에 미리 물을 주고 창가는 너무 더울까 봐 거실에 옮겨두었던 스파티필름이 꽃대가 2개나 하얗게 올라왔다.

"엄마, 진짜 이 식물은 성공했네."

"그러게, 꽃까지 이렇게 펴줄 줄이야." 여행의 피로감이 싸악 사라질 만큼 기쁜 선물이었다.

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조용한 이 식물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을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서 지금도 이 식물을 애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꽃대만 세우고 있는 스파티필름은 보고 있자니 조용히 옆에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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