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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11. 2022

엄마도 전부는 모른다

13살 지구인 이야기(57)

서울에 오면 습관처럼 큰 대형서점에 들른다. 제주의 작은 독립서점들이 주는 안락함도 좋지만 가끔은 쓰러질 듯한 양의 책과 그 책을 보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눈치 보지 않고 조용히 책을 보는 게 참 좋다.


비가 오던 지난 일요일 저녁, 아이와 숙소 근처 쇼핑몰에 들렀다. 아이가 먼저 서점을 찾아냈다.

"엄마, 저기 가보자."

서울의 대형서점이 그렇듯 역시나 크고 책과 사람이 많다. 둘러보다 보니 서점 한가운데에 커피숍이 있었고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아... 나도 저기에서 커피 마시면서 책 읽고 싶다.'

아이와 비 오는 날 서울 뚜벅이 여행 중이었던 터라 그 여유로운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엄마와 여기서 음료 한잔 마실래?" 아이가 흔쾌히 그러자 해서 커피를 마시다 평소 관심 있게 봤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 책 사서 여기서 읽고 싶어."

"너도 하나 골라 볼래? 어떤 책이든 상관없어" 나만 책을 읽기에는 미안해서 아이에게 권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돌아왔는데 의외의 책이 손에 들려있었다.

<불편한 편의점 2>!

아이가 골랐다기에는 두꺼워 호흡이 길어질 것 같은 의외의 책이라 놀랬다,

"엄마 1권 끝날 때 사실 나 울었어"

"슬퍼서?"

"응. 마지막에 괜히 눈물이 났어."

내가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을 아이가 읽었던 기억이 났고 정작 나는 읽어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다.

"엄마도 나 읽은 다음 읽어봐."

 그렇게 음료수를 한잔씩 앞에 두고 아이와 나는 서점 한복판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울까지 와서 아이와 이런 의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아이가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다니, 뭔가 작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아이가 13살이 되니 뚜벅이 여행도 많이 달라졌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택시를 타고 다니거나 이동을 최소화하며 다니곤 했었는데 나보다 키 큰 아이가 되더니 짐도 나 대신 척척 들고 걷는 것도 나보다 훨씬 잘 걷는다. 오히려 뛰고 싶어도 내 발걸음의 속도에 맞추어 주는 느낌이다. 3일 동안 지하철만으로 서울의 동서를 가로질러도 힘든 내색이 없다. 가끔 아이는 이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미 다 커있는 것 같은 순간이 불쑥 찾아온다.


여행 중에 비가 와서 전쟁기념관에 갔는데 아이는  6.25 전쟁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 나에게 당시 사용되었던 총, 대포, 비행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서 찾아본 적이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오히려 나는 관심이 없어하던 곳에서 아이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관람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했다.

'이런 것에 흥미 있어할 줄이야.'

아이는 내 호기심 어린 질문에 척척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이제까지 내가 아이를 너무 아이로만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초등학교 생활도 겨우 3개월 남짓 남았다.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는 어쩌면 점점 내가 모르는 것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은 점점 깨질 것이고 아이는 점점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엄마,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어릴 적 아이의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기민하게 아이의 기분을 알아차리며 알은체 해줄 때마다 고마워하며 늘 아이가 묻던 질문이다.

앞으로는 알은체 안 해주는 걸 더 고마워할 아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벌써?'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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