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Dec 12. 2022

데이트하고 싶어

13살 지구인 이야기(76)

아이가 외동인 이유로 나는 엄마 역할 더하기 친구 역할도 해왔다. 텔레비전 만화 하나도 혼자서 보지 않고 꼭 옆에 나를 앉히고 같이 봐야 하는 아이였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기를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많은 만화를 같이 봤다. 뽀로로, 타요, 또봇과 카봇, 레고 닌자고, 터닝 메카드, 베이블레이드, 짱구와 도라에몽 등 그 시절 그 만화들은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화를 즐겨보던 아이는 서서히 나와 극장과 전시회를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라서 극장 나들이를 하면 늘 내게 엄마는 재미있는 영화를 잘 고른다며 칭찬을 해주곤 한다.

 

"오늘 랑 데이트하고 싶어."

아이에게 포스터를 보여주며 아침 출근길에 공연을 보러 갈 거라고 말해주었다.

"꼭 가야 돼?" 6학년이 된 뒤로 내가 어디를 가보자고 하면 꼭 따라오는 말이다.

"제주에서는 볼 수 없는 공연일 걸?"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야?"

"뮤지컬 배우 중에서는 가장 유명할 걸?"

뮤지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이는 설레어하는 엄마와 달리 별로 관심이 없다. 역시나 이번에도 한번 가준다는 눈빛이다.


일찍 공연장에 가서 예매표를 받으러 갔다. 아직 배부를 하지 않는다기에 아이와 뒤돌아 서서 나오는데 공연장 문 앞에서 배우 남경주를 마주쳤다. 유명인의 주는 포스인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버렸다.

"엄마 아는 사람이야?"아이가 따라오며 물었다.

"엄마가 말한 그 배우야!"

"헐... 엄마 정말 좋겠네! 이렇게 가까이서" 아이는 나와 함께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공연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이 훌륭했다. 람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새삼스러웠다. 공연 내내 편안했고 이런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는 게 감사했다. 히 엔딩에서 배우와 팝페라 가수들이 모두 나와서 '붉은 노을'을 신나게 부르며 관객과 호흡할 때는 공연장 안의 에너지를 흠뻑 받았다. 전부 일어나라는 말에 쭈뼛쭈뼛하던 아이도 몸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좌우로 노래에 맞춰 신나게 움직였다.


"엄마, 정말 재미있었어." 아이가 공연을 보고 나오며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엄마랑 또 와줄 거지?" 

아이가 고학년이 되니 점점 둘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생긴다.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줄고 각자의 시간이 늘어난다. 혼자만의 시간이 늘며 같이 하는 즐거움 반으로 줄어버렸다. 그래도 이렇게 한번 함께하는 농도를 진하게 하면 권태기를 극복한 연인들처럼 둘 사이가 좋아진다. 


오늘의 모든 일들이 낱낱이 기억나진 못하겠지만 아이는 훗날 남경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엄마인 나와 방방 뛰며 붉은 노을을 부르던 순간과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이 좋은 감정이 오래오래 남아 어느 날의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기분 좋게 깨우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