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Dec 14. 2022

날아라 고양이

"엄마랑 고양이 보러 갈래? 이모네 집에 예쁜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대"

"고양이?"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엄마가 어쩐 일로 고양이를 보러 가자고 하는지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심지어 고양이 이름이 마루래."

"마루?" 당시 우리가 살던 집 건물 이름에도 '마루' 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이름이 주는 우연의 일치에 아이는 깜짝 놀랐다는 모습으로 더욱 호기심을 보였다.

당시 일 학년이었던 아이는 애완 고양이를 본 적이 없었기에 작은 눈이 커지며 호기심 많은 얼굴로 나를 따라나섰다. 애완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 탓에 아이가 동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이날의 기억은 더욱 아이와 내게는 선명하다.


후배의 집에 들어서니 온몸이 하얗고 수염이 긴 페르시안 고양이가 우리를 무심한 듯 쳐다본다.

"이 애는 이름이 아라야." 후배가 고양이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별로 우리를 반기는 눈빛은 아니지만 되려 그런 무심함이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고양이를 곁눈질로 조심스럽게 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다른 고양이는 어디 있어?" 분명 두 마리로 들었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아 아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때 마침 우리가 온 줄 모르고 유유히 방문 밖으로 나왔던 고양이 마루는 우리를 보고는 우왕좌왕 태엽을 감은 장난감처럼 거실 좌우를 요란하게 누비다가 결국에는 부엌으로 전력 질주하더니 놓여있던 택배 상자에 숨어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톰과 제리에서 톰에게 쫓기는 제리를 연상시켜 아이와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다시 나오겠지 했지만 고양이는 우리가 갈 때까지 그곳에서 숨죽여 있었다. 우리의 방문 고양이를 불편한 게 해버린 것은 아닌가 미안했다. 이 기억이 아이와 내가 후배의 고양이 '마루'를 만난 첫 기억이다.


이후 해가 거듭되고 그 해만큼 우리와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루는 서서히 우리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우리를 보고 도망가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딱히 관심은 없는 듯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아이가 다가가면 눈인사나누기도 하고 어느 날엔가는 아이 옆에 가만히 더니 아이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처음으로  좋아해주었다.

"우와! 마루 엄청 달라졌네. 너 좋아하나 봐?" 마루를 만나고 아이는 나중에 꼭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작은 소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를 보살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은 마루에게서 비롯되었다.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왔던 마루는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제 퇴근길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원래 심장이 좋지 않다고 들었던 마루이기에 별일이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밤새 어땠느냐고 연락을 했다가 알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기묘이던 마루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람으로서 동물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던 후배 부부임을 잘 알기에 어떤 위로의 말도 쉬이 나오지 않았다. 되려 덤덤하게 '우리 마루 그동안 아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후배를 보니 눈물이 뚝 떨어졌다. 오늘 마루와 마지막으로 현생에서의 만남을 하는 후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마음껏 슬퍼하고 오래오래 기억하자.'


특별한 종교도 믿음도 없지만 직감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는 한다. 생애 존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결코 완전한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누군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존재는 사라질지 몰라도 그 생명이 세상에 남겼던 영혼오래 남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어떤 고양이보다도 충분 사랑을 받아 행복했을 마루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오래오래 이 생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데이트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