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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17. 2022

엄마가 미안해

13살 지구인 이야기(77)

유달리 몸과 마음이 허기졌던 퇴근길. 대로 방에 들어가 잠을 자고 싶은 마음뿐인 그런 날. 이런 날도 엄마인 나는 퇴근하자마자 부엌으로 향한다.


머피의 법칙처럼 마침 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없고 쌀은 다 떨어졌다. 얼마 전 지인이 준 10kg 쌀을 까기로 했다. 입구만 개봉해서 계량컵으로 필요한 만큼 쌀을 꺼내면 될 것을 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10kg 쌀을 통째로 들고 그릇에 넣다가 와르르 쌀을 흘렸다. 하얀 햅쌀들은 다다다 거실 바닥에 통통거리며 흩어졌다. '에이!'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이왕 쏟아진 거 한번 더 들고 그릇에 넣으려는데 기분 탓일까 쌀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엄마 도와줘." 아이를 필요 없이 큰소리로 불렀다.

"잠깐만" 아이가  하는지 몰라도 한걸음에 오지 않다.

"빨리 오라고!" 기야 아이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만다. 다급하게 온 아이에게 괜히 또 날 선 말 한마디를 더하고야 만다.

"엄마도 집에서는 쉬고 싶다고!"

엄마의 느닷없는 화풀이에 아이는 입을 다물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고 몇 분 뒤에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다. 쏟아진 쌀을 치우며 바로 왜 화를 내버렸는지 후회가 밀려와 나 자신에게 화가 더 나고야 만다.


겨우 밥을 짓고 요리를 하고 저녁상을 다 차릴 무렵 아이가 씻고 나왔다.

"엄마 아까 내가 빨리 못 도와줘서 미안해."

아무 잘못 없는 아이가 사과를 했다.

"넌 잘못이 없어. 엄마가 지치다고 너한테 짜증 낸 거야."

"짜증내서 엄마가 미안해."

"괜찮아. 엄마 이 맛있는 냄새는 뭐야?" 아이는 이렇게 늘 내 사과에 관대고 별일을 별거 아닌 일로 만든다.


아이와 나는 어릴 적부터 서로에게 미안하다를 남발하며 살고 있다. 서로에게 잘못한 일을 하면 주저 없이 인정하고 사과를 구다. 10번 중 7번은 오늘처럼 내 잘못다. 사과는 절하루를 넘기지 다. 꼭 자기 전에는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다. 이가 무엇이든 나로 인한 걱정과 불안, 화를 가지고 잠자리에 들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항상 좋은 엄마가 되긴 힘들다. 에서 늘 좋은 엄마인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로 적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잔뜩 갖고 있는 엄마다.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알게 됐다. 예민한 성격인 편이라 기분 따라 아이에게 날 선 말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이기적이라 글 쓰고 책 읽는 시간을 갖겠다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끔 좋고 가끔 나쁜 엄마를 아이는 늘 이해해고 용서해준다. 아이의 이해와 용서 어쩐지 더 미안하기만 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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