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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18. 2022

마흔 중반 자아 찾기

'나는 누구인가?' 을 처음 생각해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선생님은 숙제로 그 질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오라고 하셨다. 갑자기 나는 누구라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50명의 넘는 반 아이들의 숙제는 내용이 거의 같았다. 자기 이름과 학년 반 번호, 가족관계를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우리의 숙제에 실망하신 것 같았고 그런 거 말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만 하시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때도 고지식했던 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답은 무엇이길래 선생님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라는 주제에 생각해봤던 기억이다.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는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우는 나이라고 한다.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이란다. 그 말처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시간이 훌쩍 지나 부쩍 요즘 나 스스로 그 질문을 꺼내 묻는 일들이 잦아졌다. 나 역시 자아를 잃어버렸던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다. 열심히 살아온 것은 같은데 어딘지 허전하고 내가 빠져있다. 나는 사소한 기쁨들에 행복해하는 사람인데 남들이 정해준 목표나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궤도대로 힘들게 살아온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떨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들을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다. 왜 진즉 이런 질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인다. 일찍 했다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것만 같다. 이제라도 나라는 사람을 내 삶의 중심에 세워두려고 하는 것이 어딘가 싶지만 벌써 내 생의 반살아버렸다는 생각에 조바심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확신이 서면 인생의 후반전에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무뎌진 신경을 바짝 세우고 더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찾아봐야겠다. 그냥 오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잘 살아보려고 할수록 알면 알수록 삶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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