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마음이 편안한 이유
나는 일본을 좋아하며 굉장히 자주 간다. 현재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인으로서, 최근 약 1주일간 도쿄에서 지내며 느낀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일본에 있을 때도 한국에서의 루틴과는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일본이 가진 문화와 그 고유한 환경속에 있을 때, ‘왜 내 마음이 한결 더 편할까’ 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도쿄에서 오다가다 보게되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이 제각각 모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인생에 있어 ‘개성’ 또는 ‘다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게 겉치장, 직업, 생활 패턴등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모두 드러난다.
노란색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을 인솔하는 젊은 남자 선생님들,
밝은 미소와 친절을 베풀어준 백발의 호텔 리셉셔니스트,
도쿄 마라톤 데이에 피카츄 복장을 하고 환하게 웃으며 뛰고 있던 중년의 아저씨,
영화에 나올 법한 작은 사이드카가 달린 오토바이에 나란히 탑승중이던 중년의 부부,
명품이나 화려한 치장이 아닌 소박하게 꾸미고 다니는 수많은 젊은 남녀들,
아이 좌석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양복입은 남자들,
겉에서 보면 이런 모습들은 서로 상관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모습들의 근본적인 뿌리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 묵묵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라는 걸 알게 된다.
난 어릴 적 누나따라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게임의 앤딩은 정말 다양하다. 왕자의 선택을 받은 공주가 되는 것부터 술집 직원까지.. 내가 제일 좋아했던 앤딩은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역할이었다. 거기에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아무 이유없이’ 내가 게임속 주인공이라면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가 자라온 경험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어느 나이때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소유/소비해야 하고, 어떤 직책을 가져야 하고, 어느 정도 돈을 가져야/벌어야 하는 둥의 놓여진 길이 너무 명확하다. 그 길에서 이탈하거나 그 길을 걷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회 부적응자”, “비정상적인 사람” 또는 “루저”와 같은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몇가지 안되는 인생의 선택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본인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아니,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지 생각조차 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놓여진 길에서 남들보다 앞서 나가려 노력할 뿐이다.
인생을 살아갈 수많은 선택지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볼 수만 있다면, 인생은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 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이유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며 살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릴 적 그 게임을 했었을 때처럼.
내가 일본에서 마음이 편한 이유가 이렇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이 나라에선 조금은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해야 내가 더 잘난 인생을 살까'가 아닌 '어떤 인생을 살아야 내가 더 행복할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