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드라마 편집 하기
지금은 드라마 편집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모션그래픽 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다. 휴대폰 공장에서 3개월 동안 일하며 학원비를 벌었지만, 집을 구할 돈이 없었다. 그때 마침 신림동에 살고 있었던 군대 선임 집에 얹혀살았었는데, 그만큼 영상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고 절실했다.
스윽. 샤샤삭. 샥. 샤샥. 샤~악.
소리를 내며 텐션에 대해 설명하는 선생님 앞에서 나름대로 영상을 해왔다고 자부했던 나는 그저 쓴웃음만 보였다. 텐션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감 있게 소리를 내며 알려주는 선생님의 표정에 비해 난 실망한 표정이 가득했고 지금은 우리 편집 팀원들한테서 내가 지었던 실망한 표정을 보고 있다. 그만큼 리듬이라는 것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 편집을 하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선택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무음 속에서도 리듬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편집 리듬을 아래 3가지로 구분하려고 한다.
1. 시공간을 재창조하여 리듬 만들기
2. 음악에 맞춰서 리듬 만들기
3. 대사를 가지고 놀면서 리듬 만들기
물론 위와 같은 방법들은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편집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이라고 볼 수 있다. 화려한 편집이 꼭 잘한 편집은 아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먼저 지키는 것, 그저 자르고 붙이는 것이 아닌 기본에 충실한 편집이야말로 드라마 편집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편집에서 리듬이란 긴장과 이완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이야기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유도하기 위해 사용된다. 마치 고무줄이 늘었다가 줄었다 하는 탄성력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고무줄로 튕길 듯 말 듯 할 때 친구의 표정 변화가 바로 긴장과 이완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춤과 같아서 편집자와 함께 호흡을 맞출 필요가 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지옥의 묵시록 등을 편집한 세계적인 영화 편집자 '월터 머치' 도 이야기의 리듬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일어서서 편집을 한다. 그가 발을 구르는 모습에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밤새 편집을 하다 보면 리듬에 대해 무던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일어서서 편집하는 경우가 있는데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본인의 편집이 뭔가 좀 아쉬울 때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춰보시라. 당신의 몸은 리듬을 알 것이다.
오피스 워치는 내가 와이낫미디어에 들어와서 가장 편집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들과 매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던 아주 즐거운 작업이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고민했다. 나만의 기준을 먼저 세워야 했다. 오피스 워치는 시트콤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완벽한 타이밍과 속도감으로 이루어진 컷 리듬과 리액션 그리고 블로킹을 통제해야만 재미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배우들 모두 대사를 가지고 놀 줄 알았고, 자신들만의 리듬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화면 밖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왔고, 난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것들을 캐치했어야 했다. 편집자의 힘들지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1. 시공간을 재창조하여 리듬 만들기
드라마 속 세계에서 우리는 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손끝 하나로 화면 속 인물들의 욕망과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 세계에서는 현실과 같은 물리적인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 흐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편집자가 충분히 시간과 공간을 재창조 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의 제한을 두는 순간 어려운 작업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피스 워치에서 빡대리는 매력이 넘치는 아주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첫 화인 만큼 이 씬을 통해 오피스 워치의 방향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줌 효과를 이용해 공간(구도)을 재창조하여 대사가 가지고 있는 리듬을 좀 더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이앵글이 아니었고 과감한 클로즈업이 아니었다면 줌 효과가 괜찮았을까? 연기를 비롯한 모든 미장센들이 완벽했을 때야말로 조화롭고 완벽한 리듬이 만들어진다.
간혹 편집하면서 액션 맞추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편집자들이 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작업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액션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외에 중요한 것들은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많다. 변우석 배우가 연기한 하민규 실장은 겉모습과 달리 어리숙하고 허당 같은 캐릭터이다. 난 이 모습이 진정한 하민규 실장 캐릭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코미디 한 상황에서는 인위적으로 액션을 맞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판단했고 더블액션을 이용해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허당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상보기1 영상보기2
2. 음악에 맞춰 리듬 만들기
대학생 때 영화 한 편을 보게 되면 두 번씩 감상을 했던 적이 있다. 한 번은 일반적인 감상을 하고 또 한 번은 사운드를 끄고 감상했다. 나름대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리듬을 느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손병호 배우의 첫 등장씬도 마찬가지다. 이 장면은 캐릭터의 추후 방향성을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들이 필요했다. 온전히 배우가 지닌 것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음악도 깔지 않고 편집했다. 역시 베테랑이었다. 손병호 배우는 음악이 없어도 자신만의 리듬을 생각하며 연기를 했고, 난 쉽게 그것을 캐치할 수 있었다. 배우가 생각한 리듬이 나를 통해 음악감독님에게도 전달이 잘 된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했던 장면이다. 이 장면은 음악이 없더라도 충분히 리듬이 느껴질 것이다. (성향이 비슷한 음악감독님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소통하지 않는 소통법이 가장 좋은 소통법이기도 하다.) 영상보기
3. 대사를 가지고 놀면서 리듬 만들기
드라마 편집이 재미있는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대사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캐릭터라는 이름의 인물까지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대사 호흡을 줄이거나 늘리면서 전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면 드라마 편집이라는 것은 악마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과 모순들, 온갖 감정들을 지배해야 되는 것이 우리 드라마 편집자들이 할 일이다. 위 씬은 김 팀장과 손 인턴의 대화 장면인데 내가 오피스 워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천재적인 김 팀장의 리액션과 숨넘어갈 듯한 손 인턴의 대사 호흡이 아주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 두 연기자 모두 몸짓이 정말 좋다. 표정, 눈빛, 몸짓들이 대사 호흡과 만나게 됐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난 그들과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마치 VR를 하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화면 속 배우들과 함께 호흡해 보시라. 그리고 그 호흡을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해 보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엉덩이가 들리는 시청자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드라마 편집은 예민한 작업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감정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청자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완벽한 타이밍과 속도감을 바탕으로 만든 편집자의 호흡을 시청자들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작품을 만드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일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고 늘 생각하는 편이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 드라마 편집이 아닐까?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방법들을 찾으셨으면 좋겠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필자가 그동안 경험했던 편집 작업의 일상과 느낀 점들을 공유하는 곳입니다.
자르고 붙이는 단순한 편집의 재미를 넘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매력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