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드라마 편집 하기
눈앞에 흰 도화지 한 장이 있다. 여러 크기의 붓과 물감도 준비되어 있다. 나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혹은 무엇을 적을 것인가? 마치 창작의 고뇌에 빠진 화가들처럼, 우리들도 프리미어를 켜놓은 채 오랫동안 고민에 빠진다. 무슨 컷을 첫 컷으로 쓸까? 아니, 인서트로 시작할까? 비어있는 타임라인에 걱정과 부담만 가득하다. 캔버스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도화지 한편에 첫 붓질을 시작한다.
이번 포스팅은 티저, 예고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플랫폼이 넘치는 요즘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을 유입시키고 충성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의 판가름을 짓는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예고편에 따라 시청 유무가 판단되는 혹독한 콘텐츠 시장에서 예고편의 역할은 점점 더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단순한 편집자를 넘어서 드라마라는 좋은 재료들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 붓을 들고 낙서로 시작하자. 낙서도 곧 그림이 될 것이다.
예고편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그 뿌리를 내리며 작업이 시작된다. 가장 키(KEY) 컷이 되는 장면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드라마의 방향성과 목적성에 맞게 편집이 시작된다. 헤어지는 커플의 모습에서, 범인에게 쫓기는 모습에서 그 한 컷의 이미지를 떠올려 전체적인 흐름과 느낌을 결정한다. 감정의 긴장과 이완을 본편보다 더 함축적으로 담기 위해서는 모든 촬영 소스를 확인하여야 한다. 몇 시간이 넘는 소스를 하나하나 보는 것도 고된 작업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이 작업의 차이가 예고편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연애미수는 무엇보다 대본이 주는 감성이 너무 좋았다. 인물 하나하나의 감정들 또한 살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연애미수 예고편이 가장 아쉬운 작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철저하게 계획하여 예고편을 따로 찍었다면 대본이 주는 감성과 수많은 감정들을 더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본편 소스로는 감성 가득한 드라마를 표현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었다. 연애미수는 애초부터 낚시성이 강한 예고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좀 더 접근하려고 했고, 그 과정 중에 연애미수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목적성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고 싶었다.
'태경이의 첫사랑은 누구일까?'에서 새빛남고 학생회 예고편이 시작된다. 물론 원작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입되는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주고 싶었다. 새빛남고는 BL 장르만의 특성을 조금 줄여서라도 진입장벽을 낮추려고 했다. 그래서 예고편에서도 장르적인 성격보다는 친구들과의 우정과 성장 드라마에 더 초점을 맞췄다. 태경이의 감정의 변화가 극의 중심이 되는 만큼 예고편에서도 온전히 태경이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시트콤 성격이 강한 '멜로 시리즈'는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터지고 감정의 굴곡을 확연하게 표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과장된 배우의 연기와 독특한 카메라 워크로 인해 프로젝트에는 좋은 소스들로 가득 찼다.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시공간을 재창조하여 리듬 만들기'라는 시트콤 장르에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더치 앵글과 줌 인 등 제한 없는 편집 기술들은 극의 재미를 더 해주기도 한다. 새빛남고 학생회와 달리 시트콤 예고편에서는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연출과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떡밥이나 시청자들을 낚아야 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너무 재미에만 집중하게 되면 쉽게 지루해지기 쉬워지니 편집자의 객관적인 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예고편 편집은 편집자의 연출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제한된 촬영 소스 안에서 편집자의 역량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분명 이 일은 정말 괴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 편집 작업을 함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필자가 그동안 경험했던 편집 작업의 일상과 느낀 점들을 공유하는 곳입니다.
자르고 붙이는 단순한 편집의 재미를 넘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매력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