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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숲 May 26. 2020

정이 좋은 찹쌀파이

그래도 나는 정 속에 산다.

아이들 개학이 이번 주다.


개학이 이렇게 달갑지 않기로는 처음이다. 단체 생활에서 혹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짙은 노파심에, 하루에 열두 번도 변죽을 떤다. 그냥 가정 체험학습으로 집에 더 데리고 있을까? 마음만 더 초췌해진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망설여진다.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 세균으로 새가슴이 되어 아이의 생활권을 너무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얄팍한 안일함이 줄기차게 삐짚고 올라온다. 다시 아무 일도 없던 일상으로 회귀하고픈 마음도 크다.


정답은 없다. 부모의 선택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그 어떤 약속, 외식, 여행 등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아예 그런 빌미를 만들지 않는다.

사회와의 교류는 뉴스를 통해서만 듣고, 우리 집에 오시겠다는 시어머니도 타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남편이 조금만 더 계시면 모시러 가겠다고 극구 만류할 정도이다. 매정하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상황이 정리되길 바라는 바에서이다. 모든 택배, 배달도 비대면이다. 그것이 옳은 시점이다.


그때 집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띵동!"


어? 이게 웬 낯선 소리지? 이건 무슨 소리지? 아이들도 미어캣이 되어 멀뚱멀뚱 선다.

그렇구나... 벌써 석 달이 넘는 생활 동안 우리 집 초인종은 한 번도 눌린 적이 없다. 그래야만 했고, 그것이 옳은 시점이니까.


용맹하게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 이는 누구인가? 불안한 마음에 인터폰 화면을 보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다.


"누구세요?" 현관문 안쪽에서 머쓱하게 물어봤다.


"앞집인데, 상추 좀 드시라고... "

오랜만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 이는 바로 앞집에 사시는 할머니이시다.


예기치 않은 할머님의 방문에 다소 당황은 했지만, 서둘러 문을 열어드렸다. 할머니께선 스스러우신지 수줍게 봉지를 내미시면서 말씀하신다.


"상추 어린잎이 났는데, 이걸 무쳐먹으면 순하고 맛있어 애기들 생각나서 나눠먹으려고..."

"어머!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덮어놓고 넉살 좋게 넙죽 받아 들었다. 들어와서 차 한잔 하고 가시라고 말씀드렸더니, 한사코 그냥 가신다며 돌아가신다. 현관문 문을 닫고 봉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리고 여린 상추들이 보드랍고 야들해 보였다. 손수 농사지으신 거라 하니 더없이 귀하게 느껴진다.




앞집 할머님은 그렇게 종종 방울토마토, 땅콩, 이런 것들을 나누어 주신다. 그럼 나는 기억해두었다가 언제고 아이들의 소풍 때가 되면 김밥을 넉넉히 싸서 답례를 한다. 그렇게 소소하게나마 정을 쌓았던 이웃인데, 코로나 19로 무심한 것도 일종의 생활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 한편이 시들하다.


어린 상추를 그대로 더 튼실하게 키우면 넙적한 상추쌈을 실컷 드실 텐데, 우리 아이들 생각에 아깝다 생각 안 하고 뜯어다 주신 것이 내심 감동이다. 이런 감동은 그냥 두고 있을 내가 아니다. 나의 발길은 서둘러 부엌으로 향한다. 두 아이도 '쪼르르' 따라 들어온다. 이미 내 머릿속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파이가 떠올랐다.







정이 좋은 찹쌀파이

찹쌀가루(건식) 300g

사탕수수 원당 40g

베이킹파우더 10g

소금 5g /베이킹소다 1g

우유 300g

호두 분태 80g

완두 배기 & 팥배기 각각 90g

건포도 30g

아몬드 슬라이스 & 잣


준비한 재료에서 가루류는 모두 한곳에 모아 넣고

잘 섞어주세요. 쌀가루나 밀가루가 아닌 찹쌀가루라 다소 생소하지만 그래도 유튜브 레시피를 믿고 시작해보았어요. 새로운 가루 도전은 설레임을 주네요. 완성했을 때 식감도 기대되고 궁금해요.

섞은 가루에 우유를 넣고 고무 주걱으로 치대 주세요.

아~ 찹쌀이구나 느낌이 날 때까지 치대다 보면 쌀가루나 밀가루와는 다른 느낌의 반죽이 완성돼요.

열심히 잘 저어줘야 해요. 팔이 조금 아파도 저어주세요. 맛있는 음식에는 노력이 필요해요.

반죽이 완성되었으면 완두 배기, 팥배기, 호두 분태 건포도를 넣어주세요. 그리고 골고루 잘 섞어요.

찹쌀가루라서 발효과정이 없어서 바로 구울 수 있어요. 구움 틀을 정해서 버터를 꼼꼼하게 발라줘요.

이것도 아이들이 잘해요.

오븐기가 작아서 나누어서 구웠어요.

210도 예열에서 220도 30분 넘게 구웠어요.

늘 이야기하지만 오븐마다 온도와 시간은 달라요.

본인의 오븐기의 온도를 이해하셔야 해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두 판이 만들어졌어요.

구움판에서 그대로 식혀요~

처음 구운 빵 치고 그럴싸 합니다.


칼로 자르면 속은 쫀득, 겉은 바삭이에요~

완두배기와 팥배기의 달착지근한 맛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쫀득한 찹쌀과 잘 어울려요.

자꾸 손이 가는 찹쌀파이에요.


찹쌀파이는 미국 LA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한국의 떡이 먹고 싶어서 굽기 시작한 파이래요.

그리움의 파이라니, 짠한 마음도 있어요.


이 파이에 할머니가 주신 정에 저와 아이들의 정을 더 담아서 드리려고요!



코로나 19로 삭막한 나날이지만, 여전히 제 주위엔 따뜻한 정이 살아있어요. 마음 훈훈합니다.


할머니 집 앞에 파이를 들고 있는

서희가 무척 설레어하더라고요~



"엄마, 우리 또 해요."


아이들도 정이란 무엇인지 배우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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