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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숲 May 24. 2020

달콤 퐁당 초코칩 쿠키

남편도 소년이다.

수상하다.


남편이 달라졌다.


결혼할 당시, 도시적인 성격과 시골적인 성격이 잘 겸비된 이 남자는 참 깔끔하고 다정했다. 자신의 소신을 잘 말하고, 부당한 일이 있을 때 다가가 당당하게 주장하는 남자가 세상 멋져 보였다. 상대적으로 나는 소심하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혼자 삭히는 편이라, 이런 남자이면 같이 살아도 내가 못할 말을 대신 잘해 줄 것만 같았다. 살아보니 정말 이런 점은 예상대로 남편이 잘 대처해준다. 그러면서도 시골 출신이라 선하신 분이 딱한 처지라고 생각하면 넉넉하게 베풀 줄도 알았다. 마음 씀씀이가 참 곱고, 순수하고 멋졌다. 하지만 어린 소년의 장난기가 여전히 남아 줄곧 나에게 짖꿎은 장난을 치며, 나를 깜짝 놀리기도 했다. 그래, 이것도 젊은 남자의 치기라고 생각하고 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요즘 달라졌다.



나는 냉장고에 아이들의 그림을 덕지덕지 전시하는 습관이 있다. 그냥 아이들의 미숙한 그림이 뿌듯하고 좋다. 아이가 그림을 그려오면, 마치 고흐의 작품인 양, 피카소의 작품인 양, '그레잇~!'을 연신 외치며 보란 듯이 냉장고에 붙여둔다. 그런 나의 모습에 아이들은 대단한 화가가 되어 꿈이 풍선처럼 부푼다. 오늘 서희가 냉장고에 전시한 그 그림 중, 작년 여름에 붙여 둔 그림을 다시 떼어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바로, 이 그림이다.

서희가 2019년 여름 가족 휴가 후, 그린 그림

바다와 갈매기를 그려서 나는 이 그림을 '서희의 바다'라고 제목을 붙여주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림이 아니라 글씨에 내 시선이 머물렀다.


아빠를 거꾸로 쓴 '빠아' 다.


그렇다. 요즘에 내 남편은 '빠아'가 되었다. 거꾸로 쓰인 글씨처럼 남편의 요즘은 보통과는 사뭇 반대다.

여느 때의 남편은 나만 보면 장난을 못 쳐서 안 달이나고, 내가 방으로 가면 냉큼 따라와 내 자리를 차지해버려 내가 다시 거실로 나오면 또로로 쫓아와 해해거린다. 가끔 나를 남동생 마냥 대하는 태도를 줄창 지게 보여 아닌데 싶어 '제발 좀 점잖아져!'라는 나의 거침없는 경고를 받기도 한다.


한낮에 조용하고, 차분한 우리 집 분위기는 남편의 퇴근과 동시에 왁자지껄해지기 일수다. 아이들과 씨름을 해서 기어코 한 녀석을 울리거나, 설거지하는 내 뒤에서 나에게 짖꿎은 장난을 치며 느물대기도 하는 압도적인 장난 쟁이. 평생 개구진 소년 같을 남자, 그게 바로 내 남편이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달라졌다.


점잖고, 얌전하다.

사실 내가 바라는 그런 면모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던 남편의 모습인데... 낯설고 측은하다.

기죽는 일이 생겼나?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생겼나?

평소라면 남편 옆에 붙어 앉아 꼬치꼬치 물었을 터인데, 나도 지긋이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아흔살 반 꺾인 나이라 남편도 이제 좀 철이 드나? 하는 얕은 생각도 해본다.


나는 주방 식탁에 머물러 책을 읽다가, 덮는다.

오늘은 남편이 좋아해서 종종  사먹던, 그 달콤한 초코칩 쿠키를 처음으로 시도해봐야겠다.


힘을 잃은 그대를 위해

다시 돌아올 나의 소년을 위해


소년 같은 남편을 위한

달콤 퐁당 초코칩 쿠키 (14개 분량)


무염버터 120g (상온)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 100g

달걀 1개 /물엿 6g

중력분 220g

베이킹파우더 2g

소금 2g

다크 초코칩 160g

실온에 둔 버터를 잘 저어주세요.

안 녹은 버터 젓다가 도구가 망가질 수도 있어요.

실온 버터 저었으면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을 넣어 섞어줘요.

그 속에 계란과 물엿, 소금을 넣어 섞습니다.

중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체에 담고 잘 체 쳐줘요.

다크 초콜릿을 듬뿍 넣어요.

아이들이 그냥 막 집어먹어도 두세요.

어차피 함께 먹을 테니까요.


유투브에서 냉장고 30분 휴지 시키라고 하지만 저는 그냥 구워요. 스쿱으로 둥글게 뜨면 모양이 예쁘게 나오겠지만 저희 집엔 아이스크림 스쿱은 없어요. 숟가락으로 모양을 만들어요. 아이들이 먹으려고 사놓은 초콜릿을 토핑 장식으로 활용해요.

친정엄마께 물려받은 오래된 오븐기에서 아주 맛있게 구워지는 초코칩 쿠키예요. 예열 후에 저는 180 도에서 30분 구웠어요. 오래된 오븐기라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저는 도구 탓을 하며 도전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한거라고 생각해요. 타이머 손잡이가 빠져 공구를 사용하는 낡은 오븐기이지만, 맛있는 빵과 쿠키를 잘 뽑아내는 오븐기예요. 정도 들었어요.


짠~ 생각보다 근사하고 먹음직스러운 초코칩 쿠키가 완성이 되었어요. 저렇게 14개가 나와요. 쿠키가 굳을 때까지 그냥 저렇게 식혀요. 식은 후에 그릇에 담아요.

이렇게 용기에 담아 식탁에 올려 놓았어요.

남편이 자전거 타러 나간다고 하면서 쿠키 하나를 집어 먹으며 나가네요. 그러다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는 신발도 안 벗은 채, 나를 불러요.


"그 쿠키, 하나만 더 줘봐."


곧 다시 소년으로 돌아올 나의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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