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토민 Apr 09. 2023

[사건의 지평선과 인터스텔라-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윤하-사건의 지평선, 크리스토퍼 놀런-인터스텔라>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 사건의 지평선과 인터스텔라]



 새해로 시작해 보려 한다. 누군가 말했다. 새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새해는 자극을 주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이라고.

 1년이 태양력과 같은 역법의 이치라는 걸 잠시 놓아두기로 한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덧없이 흐르는 일생에 "다시 시작"이란 리듬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은 꽤나 그럴싸하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몰라도 새해의 리듬감에 무신경해진 나를 발견했다. 당장 올해 1월 1일에 무얼 했을까. 아무리 돌이켜봐도 도통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전날의 일을 애써 그리고 한참을 떠올린 끝에야 겨우 알아차렸다. 아,1월 1일에 잠만 잤구나. 시체처럼. 병자처럼. 그래서 기억이 없구나".


 나는 새해의 리듬감을 뜻하지 않는 곳에서 느끼고 있다.  그것도 거의 매일. 가수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란 노래를 통해서다. 문득, 연신 "반복재생"을 눌러대며 이곡에 심취하던 지난 가을날이 떠올랐다. 이곡은 도입부부터 어디론가 끌려가듯 나를 매료시켰다. 간주의 리듬감은 무용수가 발을 동동 구르듯 내 안의 무언가를 뛰게 했다. 우아하면서도 확실하게!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곡엔 어떤 이유가 잘 붙지 않았다. 그냥 좋았으니까. 그런데 이곡은 무언가 달랐다. "자꾸만 생각하게 되네? 가사를, 이유를.." 다른 곡들이 내 귀를 만족시켜 준다면 이 곡은 마음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달까.



- 사건의 지평선 가사 중 -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건의 지평선 mv



 가사를 음미하며 어떤 의미를 담아 쓴 것일까 생각했다. "끝맺음과 새로운 시작"에 관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신감이 없는, 용기가 없는 사람. 처음에 누가 날 그렇게 바라 본 건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건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사건의 지평선을 듣고 있자면 왠지 모를 용기를 얻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리로는 "끝"이 "끝맺음"의 시기가 왔음을 느껴지만 무엇하나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였다. 생각해 보면 끝맺음을 제대로 못하니 시작은 언감생심! 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끝맺음 앞에 의연하다. 가감하게 "미련 따윈 집어던져! 끝내야 할 때란 걸 서로 알고 있잖아"라고 말이다. 끝은 진짜 끝이라 뒤에 아무것도 없을 거 같지만,  그래야만 새로 시작을 할 수 있음을 일러주듯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바로 그 시작이 있음을.

음원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사건의 지평선, 윤하>이 조금 뒤늦게 역주행하며 화제성을 블랙홀처럼 휘감아 삼킨 곡이라는 사실을 알 터이다. 또한 가수 윤하가 평소 관심을 내비치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소재로 하여 쓴 곡이라는 사실과 함께.


<2019년 4월 11일 인류가 최초로 촬영한 블랙홀 m87*>, 출처 : 나무위키




 사건의 지평선과 그 너머는 미지의 세계다. 아직 그 누구도 블랙홀 가까이에도 가보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출발의 상징이자 좋은 표상이 된다. 그런데 사실 물리학에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는 결국 모든 것이 소멸되는 공간이라고 한다. 블랙홀의 표면인 사건의 지평선은 그곳을 통과하는 순간 되돌아 나올 수 없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소멸이라는 사건의 경계이자 시작점. 그 어떤 물질도, 존재도, 심지어 빛까지. 그곳을 한번 통과하면 시공간의 굴곡과 공간의 소용돌이에 의해 블랙홀의 내부 인 특이점을 향해서만 나아간다. 그 끝인 특이점에서는 잡아당기고 찌그러뜨리는 힘이 무한에 가까워서 결국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소멸된다. 그렇다면 사건의 지평선을 새 출발이 아닌 소멸의 상징으로 봐야 할까? 설령 그렇다 하여도 사건의 지평선이 일순간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출처: 위니버스(weniverse)

 


 

 문득 떠올랐다. 이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한 남자가 있었지!   정확히는 한 명의 사람과 한 기의 인공지능 로봇이다. 현실 세계의 존재는 아니지만. <영화, 인터스텔라> 속 등장인물인 쿠퍼와 타스가 그 존재들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이 빛조차 집어삼키고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로 인류가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찾아야 하는 상황. 지구인이란 타이틀을 버려야만 살 수 있는 인류의 대위기.

그렇게 쿠퍼 일행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다. 영화 말미에 쿠퍼 일행은 새로운 터전 후보지였던 세 행성 중 첫 행성과 만행성은 실패하고 최후의 희망을 품은 애드먼드행성으로 출발하려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추진력이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블랙홀의 중력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힘. 타스와 쿠퍼는 각자가 타고 있는 우주선을 인듀어런스호로 부터 분리시켜 블랙홀로 떨어트리는 결정을 한다. 추진력을 발생시켜 브랜드 박사라도 애드먼드 행성으로 보내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 그렇게 쿠퍼와 타스는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 블랙홀로 떨어진다.


영화, 인터스텔라 이미지



 영화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쿠퍼와 타스는 살아남았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곳에서. 영화에서는 쿠퍼와 타스가 블랙홀에서 살아남아 정육면체 속 같은 테서렉트 공간에 도달한 것으로 나온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보고 "말도 안 돼. 아니 이해조차 안돼"라고 여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블랙홀 속에는 모든 걸 찢어발기는 특이점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온화한 특이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화 내에서도 표현되지만 가르강튀아와 같은 아주 늙은, 오래된 블랙홀의 경우 온화한 특이점이 존재할 수 있다. 온화한 특이점에서 죽지 않은 그들을 구한 것은 차원이 다른 존재(*문명의 진화를 이룩한 우리 후손)였다. 그들이 이룩해 놓은 차원이 다른 공간에서 쿠퍼는 중력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다. 쿠퍼는 우리 후손들이 찾은 그 답을 통해 딸 머피의 침실까지 가닿는다. 서로 다른 차원과 차원을 잇는 역할은 머피의 방에서 책장을 통하여 이뤄지고, 결국 머피에게 그 해답을 전달하게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 이미지



 이런 반전으로 말미암아 영화 인터스텔라 속 인류는 수명을 다한 지구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블랙홀이란 암흑의 공간에서 희망을 쏘아 올렸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인터스텔라 하면 떠오르는 이 캐치프레이즈에 걸맞은 결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전개가 다소 실망스러웠다.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어린 딸까지 떼어놓고 온 쿠퍼가 블랙홀 속의 공간에 빠진 뒤, 다시 딸의 어린 시절의 방으로 돌아가 어른이 된 머피의 기억 속에 책장 속 유령!? 이 중력이상을 통제하는 신호라는 깨닫게 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시간역설(time paradox)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답을 찾아 떠난 쿠퍼가 떠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이미 해답을 주고 있었다는 모순.

인터스텔라가 찾은 해답이 이러한 모순을 가족애라는 간절함으로 뒤섞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인터스텔라 이미지


 시간이 흐른 뒤 이것이 시간역설이 아니며,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추론적 전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더 좋아졌다. 그러던 중 그로부터 한참 뒤에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시 떠올린 것이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 두 노래와 영화는 사건의 지평선이란 공통분모가 있다. 노래 사건의 지평선 속 미지의 세계를 영화 인터스텔라가 구현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순서는 뒤 바뀌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노래는 노래일 뿐이다. 각자 재밌게 보고 듣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 이미지



 새해로 시작했으니 끝도 같게 하려 한다. 새해는 매년 오지만, 그 자체로 "시작"은 아니다. 30대라는 내 나이테가 현자들이 진즉 부여한 새해의 리듬감을 잡아먹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새해가 365일 중 하루로만 느껴진 지 오래되었다. 나는 그보다 노래와 영화를 통해 어떤 리듬감을 느끼고 있다.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사건의 지평선과 인터스텔라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이런 게 바로 시청각 효과의 힘일까.

 새해가 아니어도 새해를 맞는 기분으로 즐기자! 사건의 지평선과 인터스텔라를! 그리고 일단 시작하자! 그게 무엇이든 간에!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는 맛의 즐거움,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