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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민 Mar 05. 2023

알 수 없는 맛의 즐거움, 커피

[일상글]


알 수 없는 맛의 즐거움, 커피



한 손에 아메키라노, 빈 손엔 폰을 든 사람들. 거기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장면까지 한 스푼 더해지면 비로소 완성. 현대인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나 역시 이런 장면을 누군가에게 제공하고 있을 터. 폰을 들고 걷는 습관에,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조그마한 아이러니는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나는 커피 맛?!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싶겠지만 사실 나에게 커피는 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라, 맛을 구별해 가며 먹지는 않는다. 많이 쓰냐 덜 쓰냐의 차이는 있을 뿐이다. 그래서 커피를 두고 '조금 비싸며 쓴 물' 정도면 나에게 알맞은 표현이랄까.



 멋모르던 신입사원 시절, 회사 사람들이 물보다 커피를 찾던 모습은 꽤나 생경하게 다가왔다. 사내식당 점심 값 보다 커피가 더 비쌌지만 점심 후에 커피를 빼놓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꼭 찾는 직원도 있을 정도였으니 커피는 끼니 그 이상이었다.


 당시 학생에서 직장인으로의 변화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거 란걸 알았지만, 커피가 그 중 하나 일 줄은 결코 몰랐다. 프림을 가득 머금은 달달한 자판기커피면 충분하던 대학생에게 비싼 아메리카노는 이상하게 취향이 아니라 여겼었다. 그러다 입사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본격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때 내게 아메리카노는 취직과 함께 만난 '입사동기' 쯤 같았다(*실제론 동기가 없었지만)면 적절할까. 새로 알게 된 사이, 아직은 서로 잘 몰라 낯선, 그렇지만 뗄레야 뗄 수 없겠다 싶은 필연적인 느낌. "이 친구와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왠지 모를 우려도 함께!


  '필연'이란 말이 꼭 좋은 관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어서였을까. 아.아.와의 만남은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고민을 가져왔다. 점심 끼니때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문화에 거부감이 일었다. 식후 땡 커피타임으로부터 빠질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건 커피의 문제는 아니었다(당시엔 몰랐지만). 내가 나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 것 일뿐.



 식사 후 카페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듯이 당연한 듯했다.

 커피를 주문할 때 "전 괜찮아요"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수없이 망설였고 결국 그 말을 한 번도 입밖엔 내진 못했다. "난 굳이 비싼 물, 쓴 물은 안 먹어도 되는데...."


그런 말도 못 하냐고 느낄 법한 한심한 일이다. 근데 그때 나는 그랬다. 마치 '커피는 당연해! '라는 소리 없는 말이 발이 달려 내 주위 공기를 떠도는 것 같았고, 그것이 거역할 수 없는 '정언명령'처럼 느껴졌다.



 커피 하나에 무슨 정언명령까지 나오니 이쯤 되면 나는 커피불가론자쯤 되었을 법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가 어느새 삶으로 스며들었다. 내가 선택한 진짜 일상으로. 여전히 커피를 '맛'으로 먹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커피가 좋다. 맛은 아니더라도 커피는 다른 가치와 즐거움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아'와 '뜨아'와 '디아' 를 오가면서 신체상태에 맞춰 즐기는 커피는 나에게 안정과 휴식을 준다. 어디의 광고 카피였을까. '커피 한잔의 여유' 이제는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 말. 우리에게 커피는 스스로의 기능과 의미를 뛰어넘는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식후 땡 커피는 나에게 전혀 생경한 장면이 아니었다.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어머니는 식사 후에나 일을 나가시기 전에 꼭 커피를 찾으셨다. 그 한 잔은 그냥 커피가 아니라 '에너지'였다. 피로가 누적되어 유독 힘들어 보인 날에도 어머니는 그 한 잔의 힘으로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키셨다.


이제 나에게 회사 사람들과의 커피타임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시작되는 진짜 이야기의 시간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밥 먹을 시간을 쪼개가며,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가지는 이 시간이 우리에겐 편안한 쉼이 되어준다.


 


  커피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인 1880년대에 우리 선조들은 이것에 '가배' 또는 '양탕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커피와 유사한 발음의 한자어로 음역한 '가배'는 궁중에서, 한약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사약은 더더욱 아닌 이 쓰디쓴 물에 서양의 탕 국이란 의미의 '양탕국'은 좀 더 대중적인 의미로 붙여진 듯하다.


 내가 아메리카노 맛을 모르면서도 애음하는 아이러니는 달리 보면 커피의 역사이자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화기에 양탕국이라 이름 붙힌 우리 선조들은 오늘날 우리가 세계 커피 소비 평균의 2배가 넘는 커피공화국이 될 것을 알고 계셨을까? 그때 쓰디썼던 커피가 지금은 쓰지 않을 리 만무하다. 우리 선조에게 한약 같았을 커피가 후손인 우리에겐 기호식품을 넘어 어떠한 문화의 향유처럼 돼버린 건 천지개벽과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커피공화국에서 나와 같이 멋도 맛도 모르지만, 커피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도 취향?으로 쳐준다면 말이다. 그 누구에게든 커피가 즐거움을 주는 것임엔 분명할 터. 일을 하다 커피 잔을 핑계삼아 휴게실에 있으니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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