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토민 Jun 21. 2023

오늘 자로 휴직합니다.

일상의 마음


오늘 자로 휴직합니다.

얼마나 되뇌었을까.
너무 오래 생각하면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다,
 생생한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이 딱 그랬다. 어미새처럼 마음에 품은 단어 "휴직". 지난해를 견디는 동안 휴직에 대한 열망은 점점 극에 달했다. 출구 없이 쌓여만 가던 열망이 때로는 휴직이 이뤄진 것 같은 착각을 들게도 했다. 현실 같은 상상. 상상 같은 현실이 뒤섞이는 낯선 느낌을 경험을 했다.

생각해 보았다. 그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같이 잘 해내보자며 늘 힘과 용기를 주는 팀 선배님에게 미안해서 그런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런데 사실은 내 휴직을 나조차 용납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경로이탈이다. 머릿속 내비게이션이 경고음을 울린다. 내 무의식이 경로이탈을 감지했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려 애쓰는 의식 앞에, 내 무의식은 스스로도 설득 못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대한 벽처럼 굴었다. 순간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친다. 이윽고 어찌 못할 부끄러움 같은 게 일어난다.


 내가 아는 동료,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각자의 무게를 스스로 견뎌내고 있다. 나는 왜.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왜 나만 힘들어할까. 어리광을 부릴 나이는 지난 지 오랜데. 누구나 다 힘들어. 그런데 다 참고 일해 라는 말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거 같다. 회사에 이유 없는?! 휴직을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 말을 내뱉지 못하게 단단히 제동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하루였다. 휴직을 선언하기로 한 날. 비장한 각오와 함께 출근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타이밍은 왜 이렇게 안 맞는 건지.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는 말을 꺼내려하면 팀장 전화기가 울리고, 다시 또 타이밍이 맞다 싶은 순간엔 하필 누군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곤 느닷없이 회의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날이 지워졌다. 달리 볼 여지조차 없는 실패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들었다. 이게 아니잖아. 내 마음은 분명 이게 아닌데!  
그럼에도 내 마음은 실패한 하루에서 위안을 찾는 오작동?! 을 이어나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일주일, 일주일이 달이 되고, 달은 그렇게 수를 늘려갔다.


상상이 현실같이 느껴지는 몽롱함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이 너무 흘러서일까. 어느 날 휴직에 무감각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이 흘러나왔다. 애써 끄집어낸 게 아니라 저절로 나온 것처럼.  내 입에 잠금장치 같던 그 말이 그렇게 흘러내릴 줄 몰랐다.
​"휴직"을 입밖에 내는데 7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이유 없는 휴직을 스스로 인정하는 시간이 그만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즈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접했다. 열린 결말 같기도 닫힌 결말 같기도 하며 이해될 거 같으면서도 안 되는 아리송한 이 작품이 작지만 분명한 힘을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경로이탈을 알리는 경고음이 무서운 건 시간 내에 목적지에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지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애초에 나에게 있었나 싶기도 하고.
잠시 전원을 꺼둬 봐야겠다. 한 번쯤 그래도 언제든, 어디에서 있든 다시 새로운 경로로 안내를 시작해 주겠지.

작가의 이전글 역사의 피인가, 피의 유산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