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공부한다는 것, 사고한다는 것.
나는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당장 이번 주 토요일이 시험이라 행정법 기출을 다시 풀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특히 전공이 법학과였기에 행정법은 나에게 더 의미가 큰 과목이다.
시험지 앞에서 잠시 멈췄다.
‘부담금’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듯 낯설었다.
지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갑 이 부담금을 납부하였고 부담금 부과처분에 불가쟁력이 발생한 상태라면,
해당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되더라도 갑은 이미 납부한 부담금을 반환받을 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틀렸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위헌결정이 나면,
그 법률조항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간주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조항에 근거한 부담금은 부당이득일 것이고,
당연히 민사소송으로 반환청구가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답을 틀렸다.
문제를 틀린 이후,
나는 처음으로 헌법재판소법 제47조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기서 말하는 “당해 사건”이란
나는 오직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건만을 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법은 그렇게 좁지 않았다.
해당 조항이 적용된 구체적 재판이라면 모두 ‘당해 사건’이 된다.
즉, 위헌결정은 단지 심판을 제청한 사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조항이 직접 적용된 모든 사건에 대해 즉시 효력을 미친다.
이때부터 나는 법조문이 주는 함의를
조금 더 유연하게, 그리고 깊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1번 지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해당 조항이 위헌이면, 그 근거로 한 처분은 당연히 무효다.
그렇다면 납부한 부담금은 반환받을 수 있어야지.”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스스로 정리를 시작했다.
실제 법리와 시험 지문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었다.
이 표에서 중요한 건 마지막 줄이었다.
시험은 현실을 묻지 않는다.
시험은 시험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는 공무원 시험의 한계와 역설을 보여준다.
이후 나는 직접 문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위헌결정이 있었더라도,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당해 사건의 전제요건으로 여전히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위헌결정은 당해 사건에 직접 구속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이 문장은 틀렸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즉시 효력이 생기고,
그 조항은 모든 국가기관에 대해 적용을 배제당한다.
대법원의 해석 여부와는 관계없이,
법적으로는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이다.
이 질문을 만든 순간,
나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묻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무원 시험의 현실은 명확하다.
문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사고하고 고민하고 질문을 만드는 사람은
시험장에서 불리할 수 있다.
나는 그날 문제를 틀렸다.
하지만 동시에,
법조문과 판례의 충돌,
위헌결정의 실효범위,
행정법과 민법 사이의 관계,
그리고 법적 안정성과 정의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법을 더 깊이 이해했다.
틀린 줄 알았던 지문은
나를 더 멀리 데려가준 가장 좋은 질문이었다.
시험은 끝났지만,
공부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서도운,
2025년 봄, 한 문제의 여운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