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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勤 / 怠

스타트업 직원으로 살아남는 법

by 신동욱

대기업을 다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해보니, 여러모로 다른 점이 무척 많다. 큰 회사에서 날고 기던 사람들도 스타트업에 와서는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직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 중에 있다.


처음 적응이 어려웠던 것은 '업무 분장'이었다. 대기업은 조직에 따른 팀 간, 팀원 간 업무 분장이 명확하다. 각 담당이 최대한 세부적으로 구분되어야 업무의 회색지대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다르다. 업무 분장이 있긴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HR 리소스가 부족하다 싶으면 재무팀원도 같이 달려들어서 뚝딱 해치워야 하고, 이번엔 재무에 일손이 달린다 싶으면 HR팀원이 함께 일을 끝낸다. 팀 간, 팀원 간의 구분을 가리지 않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라면 다 같이 빨리 해치워야 한다. 언뜻 보면 대기업은 업무 프로세스가 잘 갖춰졌고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 같지만, 근본 원인은 스타트업의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축구에 비유하면 전원 공격+전원 수비의 토털 사커(Total Soccer)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철저히 리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에서는 본인 주도하에 스스로 일해야 한다. 리더의 지시를 하나하나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전체적인 방향은 리더의 의사결정에 따르되, 세부적인 사항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빠르게 일처리를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모든 일이 무척 빠르게 돌아가고 잠시라도 멍 때리다가는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에서 특히 중요한 덕목은 '勤'(부지런할 근)이요,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怠'(게으를 태)다. 怠는 '台'(별 태)와 '心'(마음 심)이 합해진 한자인데, 台는 수저를 입에 갖다 대는 모습이다. 가만히 입 벌리고 누가 내 입에 숟가락질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스타트업에서 절대 금지다. 리더가 나에게 업무 지시해주기를 기다리고, 세밀한 업무 분장을 만들어주길 바라고, 나에게 업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금세 적응 실패 각이다.


'堇'(진흙 근)을 '力'(힘 력)으로 열심히 쟁기질하는 모습의 한자 勤처럼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 쟁기질이 설혹 삽질처럼 보이고, 나중에 정말 삽질이었던 것으로 판명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실행이 중요한 곳이 스타트업이다. 이 판단이 맞을까 틀릴까 고민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과 리소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누구보다 먼저 깃발을 꽂는 것이 중요하기에 일단 뛰고 보아야 한다. 우물쭈물하다 타이밍을 놓치는 것보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재빨리 다른 선택을 하는 편이 더 낫다.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가슴에 勤을 새기고, 怠를 버려라. 아직 열심히 적응 중인 나 자신에게도 등짝 스매싱을 때리며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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