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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失 / 過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을 주는 사회

by 신동욱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성공한 사람은 모든 재력과 명예를 거머쥐지만 실패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다.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인색하고, 그렇게 실패한 사람들은 비관 끝에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아버지가 은행에서 명예퇴직하셨을 즈음 함께 은행을 나왔던 당신의 동료들 중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가슴이 아팠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죽음을 택한다.


성공과 성과를 강조하면서 실패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한 사회. 빚으로 벼랑에 몰린 사람들이 우승 상금을 놓고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한다는 설정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우리 현실과 지독히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사회로 만들려면, 실패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과정이 되어야 한다. 발이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순간에 직면하더라도 최소한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은 마련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잃다', '실패하다', '잘못하다' 등의 뜻을 가진 한자 '失'(잃을 실)은 '手'(손 수)에서 뭔가 떨어지는 모습에서 만들어졌다지만, 잘 보면 묘하게 닮은 한자가 있다. '生'(날 생)이다. 生은 '一'(한 일)로 표현된 땅으로부터 새싹이 돋는 모습이다. 땅바닥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반면 失은 바닥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불안하게 서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의 발아래에도 一이 놓일 때, 失은 生으로 바뀔 수 있다. 失을 生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들은 견딜 힘을 얻는다. 지금의 시련이 반드시 지나가고 좋은 날이 올 거라는 새 희망을 품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난다는 뜻의 한자 '過'(지날 과)는 '辶'(쉬엄쉬엄 갈 착)과 '咼'(가를 과)가 합해진 모양인데, 咼는 뼈를 뜻한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다. 거듭된 실패로 뼈만 남은 몰골이면 어떠랴, 계속 걸어갈 수 있는 힘과 용기만 얻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지나갈' 날이 반드시 온다. 그런 믿음을 심어주고,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회만이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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