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負 / 貪 / 僋

내가 돈을 쓰나요, 돈이 나를 쓰나요?

by 신동욱

벌어도 벌어도 더 벌고 싶은 게 돈의 무서운 속성이 아닐까. (앞으로 50년 정도 더 산다고 치면) 50억 원만 있어도 더 큰 욕심은 안 날 것 같기도 한데, 정말 그럴지는... 진짜 50억 원이 생겼을 때 두고 볼 일이다. 수백억을 벌어도 만족 못한 채 더 가지려 눈이 벌건 사람들이 넘쳐 나는 걸 보면,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負'(질 부)는 빚을 진다는 뜻이다. 돈을 의미하는 '貝'(조개 패)와 '㔾'(병부 절)의 변형자인 '⺈'가 합한 글자다. 㔾은 사람이 허리를 굽힌 모습이니, 돈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빚에 쪼들려 돈에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만 뜻하는 걸까? 충분히 먹고 살만 하면서도 끊임없이 돈돈 거리는 사람들도 돈에 허덕이며 사는 게 아닌가? 이들도 역시 돈 때문에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미 돈이 넘쳐나면서도 끊임없이 더 벌려고 아우성인, 그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난 그런 부자가 되어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얼마 전 별세하신 ‘시대의 어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의 생전 인터뷰를 떠올리며 짐작해본다.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 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 두어라”, 한겨레신문, 2014년 1월 4일 자)


기초적인 생존을 위해 돈은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노후를 위해 돈은 필요하다. 그 정도 돈은 충분히 벌고 있는데도 여전히 돈에 갈급하다면? 이때부터는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진 단계다. 돈이 더 필요해서가 아니라, 돈 버는 것 자체가 쾌락이 되어 버린 것이다. '貪'(탐할 탐)이다. 이 한자는 '今'(이제 금)과 貝로 이뤄졌는데, 今은 지금 입에 뭔가를 삼키는 순간을 포착한 한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 버는 쾌락에 빠져 끊임없이 돈을 집어삼키려는 집착이 바로 貪이다.


알콜 중독도 조심하고, 니코틴 중독도 조심해야겠지만, 돈 중독도 조심해야 한다. 채현국 선생의 말씀처럼 돈 중독에 빠지면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으로' 되어버린다. 돈은 내가 살아갈 만큼 있으면 된다. 돈이 나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돈을 쓸 만큼만 있으면 된다.으로 가득한 '亻'(사람 인)을 뜻하는 한자는 '僋'(어리석을 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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