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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Feb 02. 2020

아들아, 호의를 베풀며 살거라-홍순언과 류씨 부인

아빠가 쓰는 위인전


 500년 전쯤, 우리나라가 조선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시절, 일본이 침략해온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어. 이순신 장군이나 유성룡 등 많은 분들의 활약으로 마침내 일본군을 몰아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야.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한 명의 숨은 공신이 있었단다. 그분의 이름은 홍순언. 지금으로 치면 외교관 역할을 하던 역관 출신이야.     


 사실 전쟁 초기 조선은 일본군의 파죽지세 앞에 속수무책이었어. 임금님과 신하들은 부랴부랴 피난을 떠났고, 불과 전쟁 시작 20일 만에 수도인 한양이 점령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지. 조선의 이웃나라였던 중국 명나라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단다. 하지만 조선이 일본과 연합하여, 명나라에 침략하려는 것은 아닌지 어처구니없는 의심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섣불리 구원병을 보내주려 하지 않았어. 이때 구원병을 보내야 한다고 홀로 주장하던 명나라의 병부상서(국방부장관) 석성은 조선의 다른 고위관리도 아닌 일개 역관인 홍순언을 급하게 부른단다. 조선 정부가 직접 구원병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내온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었어. 홍순언은 이 사실을 조선 정부에 긴급히 알렸고, 결국 명나라의 구원병이 출진하게 된단다. 이처럼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 채널이 재빨리 작동하여 전쟁의 판도까지 바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홍순언에 대한 석성의 깊은 신뢰가 있었단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아주 오래전에 홍순언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간 적이 있었어. 그때 기생이었던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단다. 나중에 류씨 부인으로 알려지는 그녀의 사연을 들어보니, 매우 기구한 처지에 있었어. 벼슬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먼 명나라 수도까지 왔는데, 부모님을 모두 전염병으로 잃고 졸지에 홀로 남겨졌던 거야.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 장례를 치를 돈 조차 없어 어쩔 수 없이 기생집에 몸을 맡기고 있었던 거지.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 들은 홍순언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모두 그 여인에게 줘버려. 300금, 지금으로 치면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이야. 당시 역관들은 외교관뿐만 아니라 무역상의 역할도 했었기 때문에 그런 거금이 있었던 거지. 처음 보는 다른 나라 여인에게 그 큰돈을 선뜻 줘버린 그의 행동에 동료들은 비웃었단다.     


 문제는 그 돈이 무역을 하라고 나라에서 빌려준 돈이었다는 거야. 당장 공금횡령죄로 잡혀 버리고 말았어. 그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처럼 보였어.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불가능해 보이는 영원한 외교적 숙제였던 ‘종계변무’를 해결하라는 임무까지 떠안게 돼.     


 종계변무. 이게 뭐냐면 조선을 세운 시조가 태조 이성계라는 분인데, 명나라의 공식 기록에 그의 아버지가 이인임이라고 엉뚱하게 적혀 있었던 거야. 이인임은 사실 이성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간신이고,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았던 정적인데 아버지라니. 명분과 혈통을 중시하는 조선 왕실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날만한 일이지. 하지만 조선과 명나라는 대등한 관계의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의 공식적인 항의에도 이 기록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아. 그렇게 무려 200년 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하던 그 난제를, 이번에도 해결하지 못하면 당장 목을 베겠다는 임금님의 엄포와 함께 홍순언에게 맡기게 된 거야.     


 명나라로 떠나는 홍순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는 전에도 이 임무를 위해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 그런데 명나라에 도착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져. 명나라의 외교부 최고위급 관리였던 예부시랑(외교부차관) 석성이 직접 마중을 나온 거야. 이것은 정말 파격적인 대접이었어. 그리고 그 옆에는 그의 부인이 서 있었는데, 바로 오래전 호의를 베풀었던 류씨 부인이었던 거야! 홍순언 덕분에 부모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던 그녀는 나중에 석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던 거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던 그녀는 홍순언이 명나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던 거야.     


 석성은 자신의 부인에게 지난날 베풀어주었던 은혜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해. 명나라 관리들의 비협조로 여태껏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던 종계변무 임무는 그렇게 극적으로 해결하게 된 거야.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돼. 어쨌든 감옥에 갇혀 평생 썩을 뻔했던 홍순언은 오히려 공신이 되어 높은 관직과 땅도 하사 받게 된단다. 정말 이보다 짜릿한 인생역전이 또 있을까. 

    


 홍순언의 이 극적인 성공 이야기, 더 나아가 우리나라 역사에 까지 큰 영향을 준 그 출발점에는 그의 따뜻한 호의가 있었어. 그가 류씨 부인에게 베푼 은혜가 없었다면 명나라의 실권자와 이처럼 가까워질 일도 없었을 거야. 종계변무는 영원히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구원병을 얻는데 좀 더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겠지. 홍순언 자신도, 어쩌면 충동적으로 저지른(?) 그 선의의 행동 하나가 이처럼 놀라운 파급효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 같아.     


 역사를 돌아보면 이처럼 호의를 베푼 인물들의 사례는 무척 많아. 하지만 굳이 홍순언의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는 이유는, 그 결과가 더욱 극적이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면, 언젠가 너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이것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300금이나 되는 돈을 불쌍한 여인을 위해 선뜻 내놓은 홍순언도 대단하지만, 자신이 받은 선의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갚은 류씨 부인도 정말 훌륭한 인물인 것 같아. 우리는 홍순언뿐만 아니라, 류씨 부인도 반드시 함께 기억해야 해.     


 호의라는 것은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어. 홍순언처럼 큰돈을 선뜻 기부하는 것도 호의라 할 수 있지만, 상대가 필요할 때 내미는 작은 도움의 손길, 또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호의라 할 수 있지. 돈이든,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든, 그것이 크든 작든지 간에 누군가 필요로 할 때 필요한 것을 준다면 그게 바로 호의란다. 우리는 가능한 호의를 베풀 줄 알아야 하고, 또 혹시라도 호의를 받게 된다면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     



 이번에 중국의 우한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크게 덮치고 있어. 수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하자, 정부는 그 지역에 사는 우리 교민들을 긴급하게 데려 왔단다. 무서운 전염병이 돌던 지역에 있던 분들이라 아산과 진천에 있는 국가기관에 당분간 격리 조치를 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전염병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 언제 어떻게 감염이 될지 모르니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에 딱 좋아. 그러니 아산과 진천에 거주하는 분들은 당연히 걱정이 될 거야. 그래서 일부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그 교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단다. 그런 보이지 않는 위험에 너도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빠 또한 그 입장이라도 당연히 걱정이 되었을 거야. 입장을 바꿔보고 생각한다면 그분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어.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 교민들에게 고생이 많으셨다고, 푹 쉬었다 건강히 돌아가시라고 응원해주는 아산, 진천 주민들도 계셨어. 아빠는 그분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에, 그리고 호의에 큰 감동을 느꼈단다.      


 호의를 베풀어 주는 것, 또는 반대하는 것. 모두 그들이 가진 정당한 의사표현의 권리야. 국가의 결정이 합법적인 이상 결국 따라야겠지만, 민주국가에서 의견은 얼마든지 표출할 수 있지. 그런데 반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준 그분들께 아빠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우리 모두는 그분들의 따뜻한 호의를 기억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아들아, 우리도 남들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살도록 하자. 함부로 빚보증을 서라거나, 너도 굶고 있는 상황에서 네 가족이 먹어야 할 쌀 한 톨까지 내어줄 정도로 무리하게 베풀라는 뜻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내에서, 너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호의를 베풀도록 해라. 네가 호의를 베풀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정도의 호의라면 애초에 안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호의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란다. 누구도 너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강요할 수 없고, 그건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야. 당연한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호의를 당연하듯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호의를 기대하기만 한다면,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게 될 거야. 하지만 누군가 너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다면, 그분은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행동을 너를 위해 해 준 것이니 정말 감사하게 여기거라. 그리고 꼭 기억하고 있다가, 언젠가 너도 기회가 된다면 갚아야 한다.     


 아빠도 물론 부족한 점이 많지만, 홍순언과 류씨 부인의 이야기를 보며 참 많은 것을 느꼈단다. 호의를 베풀 줄 알고, 또 그것을 갚을 줄 아는 마음. 그런 삶의 자세가 결국은 나에게도 득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 아들에게도 가르쳐 주려면 우선 아빠가 먼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 아빠도 그렇게 더 노력할게. 사랑한다, 우리 아들.     



# 오늘 아빠의 다짐

 - 나의 능력이 닿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한, 최대한 호의를 베푸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자.




성장판 독서모임에서 2월부터 4월까지 "내 삶에 쓸모 있는 역사"라는 주제로 독서모임을 진행합니다. 역사뿐 아니라 경영마케팅, 유튜브, 페미니즘, 콘텐츠 제작 등 여러 주제별 독서모임이 기획되었습니다. 아래 링크 한번 둘러보시고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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